한국이 유교의 본류?
오피니언 / 2010. 11. 16. 11:03
언젠가 중국 샹하이(上海)에서 가라오케의 성매매 행위를 단속했을 때의 일이다. 중국 공안의 단속망에 걸려든 한 샤오지에(小姐)의 핸드백에서 립스틱과 책 한 권이 발견됐다. 그건 '문화 고려(文化苦麗)'라는 베스트셀러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썼던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와 비슷한 형식의 여행기다. 여행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연금술적인 책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유흥업소의 여종업원까지 챙겨 읽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의 작가이자 미학자인 위추위(余秋雨,60)다. 최근 중국 대륙에 휘몰아치고 있는 문화보수주의 바람을 타고 순항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가라오케의 단속 사례는 입소문을 타고 중국 전역에 퍼졌다. 이후 이 책은 '문화 립스틱'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공자탄신일(9월 28일)을 앞두고 8일 중국 북부 산시 성의 한 유교 사원에서 중국 전통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공자탄생기념제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보수주의를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공자탄생기념제의 부활을 꼽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이같은 전통문화의 재건과 유교 부활정책에 앞장서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시동을 건 공자 기념제 부활은 2004년 9월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도 오랫동안 기념제를 공식적으로 열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한 중국은 우리나라 성균관 유생들을 초청해 한 수 배웠다.우리 전통 선비들이 "한국이 유교의 본류(本流)"라며 어깨를 으쓱한 것은 물론이다. 중국은 기념제뿐만 아니라 '공자 문화의 달'을 제정,운영한다. 또 중국은 교육부 주도로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세웠다. 자국민의 썩 좋지않은 감정을 뛰어넘어 일본에서도 문을 열었을 정도다. '독경학교(讀經學校)'의 설립도 눈길을 끈다. 이 옛 서당식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게 하고 논어,맹자 등 경전을 가르친다.
56개 민족이 살고 있는 중국은 지난달 29일 '제1회 중국 민족 미인대회'(베이징)를 열었다. 조선족(둘째 줄 맨 오른쪽) 등 소수민족 여성들이 전통의상 차림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한족에는 원래 이렇다할 민속 복장이 없다.그런데,최근 역시 문화보수주의 풍조에 힘입어 한복(漢服)이 등장했다. 청나라의 뿌리인 만주족 옷이 아닌 새 복장,표준 복장을 만들어낸 셈이다. 한편 국가 문양도 마오시대의 '해바라기'와 1980년대의 '원자 모형도'를 거쳐 1990년대에 선보인 '중국 매듭(中國結)'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문양이 마오쩌뚱을 향한 충성,개혁개방시대의 과학기술 상징을 거쳐 일치단결을 뜻하는 매듭으로 진화한 것이다.
중국인 스스로는 '문화보수주의'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 이는 객관적 분석 시각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개념에 따른 새로운 움직임이 중국 문화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주 5일제가 자리잡고,대도시 중산층이 형성된 뒤엔 레저를 중시하는 풍조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80후(1980년대 이후 태어난 독생자) 계층이 신(新)문화의 주체세력으로 힘을 불리고 있다. 젊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커리어우먼(白領麗人)이 점점 더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펑펑 쓰는 부류(月光族)가 유력한 소비계층으로 떠올랐다. 스타벅스의 경우 1999년 베이징에 첫 매장을 낸 이후 매년 3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이는 낭만 기질을 지닌 도시 지식인,화이트칼라 지식인(小資)들의 높은 선호도에 힘입은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동안 젊은 중국인들에게 각광받던 '카푸치노'는 이제 한물 갔다. '에스프레소'가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중국혁명이 상품화하고,좌파가 부활하는 등 혁명시대에의 향수도 널리 번지고 있다. 마오쩌뚱 생가,혁명 성지 등의 여행(紅色旅遊)에 나서는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도처에서 '홍색여유' 발대식이 열린다. 극장식 레스토랑인 '문혁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체 게바라 혁명을 그린 연극 표가 불티나게 팔린다. 이래저래 중국에선 지금, 또다른 문화혁명이 진행형이다. 현대성(모더니티)에서 중화성(中華性=本土性)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선 아직 '깔딱 고개'가 썩 가깝지는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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