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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제2의 인생을 위해 최근 1년 사이 사들인 장비들을 확인하고 보수하기로 한 날이다.오전에 일치감치 마포 사무실의 다른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재택근무하겠노라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흔들거리는 치아를 바로잡기 위해 치과에 다녀왔다. 이 때부터 몇 시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베란다 사물함을 뒤져 흘러간 물건들을 모두 정리했다.


이들 물건 가운데 장비 보수의 핵심 대상은 삼성 HD캠코더(HMX-H200), 이동식 라이브 웹 카메라(웹캠,actto社제품), 펜 태블릿(뱀부 MTE-450,와콤社 제품)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좀 낡은 디지털카메라 1대와 이름도 쓰임새도 기억하기 힘든 각종 케이블이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 나온다. 

머리가 상당히 어지럽다.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텅빈 아파트 거실에는 사물함에서 빼낸 장비들로 가득하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각 장비의 설명서를 찾아내 읽으면서 세트끼리 구분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이들 장비는 모두 블로그를 하기 위해 장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난 '대한민국의 블로그 고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지도 모르겠다. 2004년 3월 조인스닷컴 대표 등 간부진의 부탁을 받고 블로그를 앞장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후배기자들에게 솔선하는 의미에서였다. 

조인스 블로그를 하다보니 스캐너와 디지털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느날 퍼뜩 들었다. 마누하님에게 말했다. 그녀는 얼마후 이 두 가지 장비(휴렛패커드社의 스캐너,니콘社의 디지털카메라)를 사줬다. 이후 우리 마누하님의 적극적인 후원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오늘 보수한 장비 외에 어느 시점에서 이른바 첨단제품이라고 불리는 제품의 거의 대부분엔 마누하님의 애틋한 관심과 애정이 깃들여 있다. 

그 덕분에 2005년 한양대 언론대학원 석사논문을 '블로그'로 썼다. 최근 1년 사이에 사들인 제품의 상당수도 블로깅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제2의 인생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철철 넘치는 자신감은 기본적으로 블로깅을 무척 즐기는 데서 비롯됐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염두에 두는 공자님의 지호락(知好樂) 가운데 마지막의 '락(樂)'에 해당하는 게 블로깅이 아닐까.

마침내, 아는 것(知)과 좋아하는 것(好)을 훌쩍 뛰어넘는 '락(樂)'의 대상 가운데 확실한 것 하나가 바로 블로깅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매스컴에 종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니컴이랄까 1인 미디어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즐기는 짓을 하다 죽는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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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을 완전히 정리했다. 드디어 2010년 11월 30일,30년에 가까운 신문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확히 27년 1개월 만이다. 나이도 한 달 후면 55세가 되고,아무런 속박도 없는 자유인이 됐으니 명실상부한 자기성찰이 가능해 졌다.  








군 제대를 앞두고 관물을 반납하던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어떤 측면에서는 제대나 퇴직이나 속박을 훌훌 털고 나아가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다. 그 때는 스물다섯 살 패기가 넘치는 청년이었다. 이젠 쉰 다섯 원숙함의 향기를 뿜어내야 할 장년이다. 몇 년 동안 쓰던 노트북 PC를 회사에 되돌려줬다. 페북 친구인 정보지원팀장과 흡연동지 몇 사람이 달려와 건강과 행운을 빌어줬다.  


총무팀엔 신분증을,재무팀엔 법인카드를 각각 반납했다. 보직을 1998년부터 줄곧 맡아 법인카드를 무려 13년이나 썼다. 직책이 썩 빛나지 않았더라도 이런 건 신문사에서 흔하지 않은 기록에 속한다. 몇 년 전 관훈클럽 세미나 때 만난 한 선배는 내게 '보직 전문기자'라고 놀려댔다. 그만큼 회사에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2010년 말로 딱 2년 남은 회사 생활을 채웠더라도 아마 법인카드는 계속 썼을 것 같다.  




오늘은 좀 어지럽다. 어제 회사 동료들과 1,2차를 하고 2년 전 퇴직한 회사 동기를 불러내 1차를 했다. 때문에 평형감각에 다소 문제가 있는 건 과음 때문일 것이다. 퇴직한다고 어지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또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머리가 팽 돌 이유가 있겠는가.

글=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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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분신(分身) 같은 존재나 징표가 있게 마련이다. 월급쟁이에겐 신분증이 중요한 분신의 하나다. 신분증이 회사 출입증의 역할을 하거나 출결을 체크하는 데 통상 쓰이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고 증명하는 신분증이야말로 개인의 분신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제 근무일로 따져 월,화 이틀이 지나면 정든 회사를 영영 떠난다. 나는 회사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애써 조직에 적응하려고 했다. 한편 회사는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를 예쁘게 감싸준 게 분명하다. 그 덕분에 그 오랜 세월을 '동거'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금요일 오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퇴직 처리 절차에 따라 신분증과 노트북PC를 반납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트북은, 한 달 간의 말년휴가(연월차 휴가) 내내  '출근'한 마포 사무실에 있다. 양복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에서 회사 신분증을 꺼내 봤다. 이 증이 발급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때가 꽤 묻어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고인의 몸을 정성껏 깨끗하게 씻어 드린다. 그런 다음 수의를 입힌다. 서양에선 고인의 얼굴 등 몸 치장까지 한다. 가톨릭 장례의식을 영화 같은데서 보면 고인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눈을 감은 채 관에 누워 있다. 조문객들은 사자(死者)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꽃을 가볍게 놓는다. 

고인의 몸을 청결하게 하는 건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의 경우에 한하지 않는다. 화장(火葬)할 때도 그렇게 한다. 그것은 떠나는,아니 돌아가는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땅 속에서 곧 영면에 들어가거나 불구덩이 속에서 몇 줌의 재가 될 터인데도 굳이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인간의 일이다.






      

신분증은 아마도 1990년대 초반부터 내 분신이었다. 그런 귀중한 신분증을 며칠 뒤 장례 지내야 한다. 내 분신은 반납되면 파쇄기로 부숴지고 이내 쓰레기통에 쳐박힐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에 타 육신을 잃을 게 분명하다. 죽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욕실로 신분증을 들고 가 깨끗히 씻어줬다. 오랫동안 풍파에 시달려 때가 덕지덕지 묻고 낡은 내 분신을 비누로 정성껏 씻어줬다. 어차피 며칠 후면 소각장의 불덩이 속에서 활활 탄다. 갓난 아이의 한 줌도 안되는 재가 돼 사라진다. 하지만 그냥 보내지는 못하겠다. 분신의 육신을 어루만져 준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마지막으로 건넨다. 
"슬퍼하지 말아라.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 모든 것은 흐른다 ( Panta rhei )."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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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했더니 허리가 아프고,옆구리가 결린다. 무선 공유기에 노트북의 방향을 맞추다 보니 몸이 뒤틀린 자세로 컴퓨터 작업을 한 탓이다. 완전 백수가 되는 첫 달인 12월의 활동을 준비하느라 요즘 회사 근무 때보다 2배 이상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결행'(선배의 표현)을 했으니 준비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큰 자유를 찾긴 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 옭아매는 틀이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자정 무렵,  등과 옆구리 부근에 파스를 다닥다닥 붙이고 산책에 나섰다. 언제나 오가는 양재천 길이 산책 코스다. 양재천엔 안개가 자욱하다. 신문에서 많이 쓰는 '안개 정국'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지금, 그야말로 앞날이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 하늘에 뜬 달이 어느새 꽉 찼다. 저렇게 만월(滿月)인 걸 보니 오늘이 음력 보름 전후인 것 같다. 집에 와서 달력을 봤더니 20일이 음력 보름인 게 맞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운 달은 또 자신을 점점 더 채워나간다. 나는 이제 기우는 달이다.다시 꽉 채워야 할 달이다.   




이에 앞서 오후엔 렌즈가 심하게 긁힌 안경을 새로 맞추러 단골점에 갔다. 뭘 하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때문에 안경테를 학생들이 주로 쓰는 검은 뿔테로 바꿀 작정이었다. 그리고 다초점렌즈도 가급적 싼 것으로 고를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값싸고 튼튼한 학생 뿔테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경점 직원은 내 자료를 찾아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2006년에 맞춘 안경과 렌즈는 아마도 최상급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직원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많은 돈을 들인 것 같다. 오늘 가격표를 보니까 당시의 수준으로 안경을 맞추려면 80만 원 안팎이 들 것 같다. 

안경점 직원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쉽게 부러진다는 학생 뿔테는 포기했다. 하지만 다초점 렌즈는 일제가 아닌 국산을 택했다. 훨씬 더 싸다. 현금으로 지불키로 하고  값을 흥정해 31만 원으로 결론냈다. 수입이 다시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지출 규모를 줄이는 게 마땅하다.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 전혀 없다. 학창시절엔 이보다 몇 배 더 고생하지 않았는가. 양재천을 거닐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그래서 속박을 떨쳐버린 자유란 좋은 것이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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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부지법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홀로 식사를 하러 온 중장년,노년층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짐작컨대 법원 근처의 법무사 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아닌가 싶다. 미역국을 포함해 1식 5찬. 오랜 만에 콩나물밥에 간장을 쳐서 먹는 메뉴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가져온 밥과 반찬을 다 먹었다. 식권은 한 장에 3500원. 매점에서 10장을 사서 챙겼다. 서부지법 외에도 큰 구내식당이 이 근처에 2곳 더 있다고 한다. 서부지검과 마포경찰서의 구내식당이다. 밖에서 김치찌개,칼국수,순대해장국 등을 간단히 먹으려면 5000~6000원 짜리를 파는 음식점에 가면 된다.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났더니 뜨끈뜨끈한 유자차가 기다린다. 목구멍과 가슴이 시원하게 툭 트이는 듯하다. 가장 번잡한 시간을 피하면 줄을 서지 않고 점심을 이렇게 뚝딱 해치울 수 있다. 본격적인 퇴직 준비를 위해 말년휴가(연월차휴가)에 들어간 지 10일 지났는데, 무난히 잘 적응해 가고 있다. 6개월 내지 1년 동안 착실히 준비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쉬었다 가라는 식당 의자의 호의를 뿌리치고 사무실로 향했다. 할 일이 많다. 오늘은 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 프로그램 CD를 여러 개 갖고 와 맥 미니PC에 깔았다. 우선 익숙한 윈도우를 쓰면서 낯설기만 하는 맥에 서서히 도전할 생각이다. 비어 있는 줄 모르고 갖고 온 CD 때문에 애를 먹었다. 첫 CD를 넣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맥을 만질 줄 몰라서 발생하는 일로 생각하며 끙끙대다 이내 정신을 차려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명함을 디자인했다.

"회사에서 나오면 모든 게 돈이다"라던 친구들의 말이 점점 더 실감난다.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 휴대폰 및 유선전화 비용, 소모품 구입비, 식사비 등을 모두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난 '백수 연습'을 도상훈련으로나마 꽤 했다. 때문에 이런 일들이 귀찮거나 당혹스럽지 않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조차 없이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분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지위와 거기서 파생되는 혜택이 매우 쥐꼬리만한 직업이라도 막상 성(城)밖에 나오면 크게 보이게 마련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좋은 것도 있다. 그건 바로 '무한 자유'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나의 생각과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중학교 시절 이후 얼마 만의 짜릿한 자유인가. 우주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오늘을 그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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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오전 사무실에 내 전용 전화가 가설됐다.
한 사무실을 쓰는 대학 동기가 이 전화기로 집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 "개통을 축하합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2의 인생'(second life) 장도(壯途)에 오르는 베이비부머는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퇴직 전에 망가진 이빨을 치료하기 위해 6월부터 서둘렀다. 임플란트 대상 이빨 두 개 가운데 하나가 오늘 심어졌다. 다음 주엔 실밥을 빼면서 본을 뜬다고 했다. 그 다음엔 또하나의 이빨 심기로 넘어갈 예정이다. 11월 중 치료가 모두 끝나면 좋겠다.





 '내가 이 세상에 살 필요가 없을 때'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비싼 치료비 때문에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할 경우다. 그 정도도 안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하다. 겨울철 지리산에 들어가 소주 몇 병 마시고 잠이 든다면 자연사(自然死)의 형태로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다. 몸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갈 수 있다. (물론 이는 '死卽生 生卽死'의 각오로 살겠다는 의미다.)


치과 진료를 마친 뒤 머나먼 사무실로 출근했다. 전용 전화로 마누하님과 첫 통화를 했다. 비용이 들긴 하지만 대학 동기들의 공동 사무실에 합류한 건 잘한 일이다. 실업자가 집에 있다간 우울증에 걸리거나 퇴보의 길로 치달을 우려가 크다. 외부의 자극을 받아야 자신이 기획한 길로 더욱 정진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전용전화를 놨으니, 이제 명함을 만들어야 겠다. 내가 직접 만들까 인쇄소에 맡길까,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곰곰 생각 중이다. 올초부터 후이즈(whois.co.kr) 등에서 구입한  URL 12개 가운데 7개를 블로그에 리다이렉팅해 놨으니 닷컴,닷넷이 7개나 된다. 페이스북에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두 까발겨 놨으니 페북 주소를 명함에 박을 수도 있겠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는 어떨까. 아니면 'IT코치(Coach)'라고 박을까?  내 1차 계획은 '스스로 고용하라'의 실천이다. 그런 다음, 남을 고용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출 참이다. 1차든 2차든 준비 기간이 꽤 길 것 같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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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철석같이 믿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박사의 책 이름이다. 
20101년 11월 8일. 퇴직 준비를 위해 한 달 간 휴가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몇 달이 훌쩍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날 저녁엔 소셜미디어랩세미나에 참석했다. 소셜미디어랩은 베타뉴스 이직 대표가 운영한다.회비 1만 5000원(현장 등록,예약 등록은 1만원)









오후 8시부터 녹사평역 회의실에서 진행된 이날 세미나 밮표자는 김중태 IT연구원장이었다. 그가 쓴 비즈니스 미래지도 시리즈 2권을 정성들여 읽은 터라 내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선 시간,공간,사람 및 방향  가운데 하나둘 바꿔보라"는 말에 필이 꽂혔다. 이거 하나 건진 것으로도 회비는 아깝지 않았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QR코드에 대해 들었다. 
QR코드는 관련 사이트(http://qrcode.com)에 가면 만들 수 있다. 


아이폰의 어플 중 하나인 스캔서치(ScanSearch)로 책 표지를 스캔하면 도서 정보가 가지런하게 나오는 것도 세미나 강의 도중 해봤다. 재미 있었다. 가까운 지형지물(nearby)은 혼자 해 본 적이 있다. 세미나 후 뒷풀이를 너무 길게 했다. 물론 내가 부추겼다. 젊은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무리를 한 셈이다. 

이에 앞서, 점심엔 퇴직 사우 한 분,재직 후배 한 분과 횟집에서 소주를 몇 잔 마셨다. 사무실에 돌아와선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한 꼭지를 번역해 봤다. 참 오랜 만의 경험이다. 23년  전 연합통신(연합뉴스의 개칭 전 회사 이름) 외신부에서 기사를 만든 이후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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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일. 돈 내고 '출근'한 둘째 날이다. 

아침에 티스토리에 올린 글을 다시 훑어보았다. 이어 최근에 관심을 둔 트위터 광고 '애드얌'에 들어가 내가 트윗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애드얌의 마케팅 행위로는 아직 푼돈밖에 건질 수 없다. 하지만 초창기라 여기에 작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애드얌'의 트윗 인정 인원이 현재의 50명~150명에서  1000명 정도까지 올라가고, 하루 트윗 인정 횟수도 10회 이상으로 높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넘어 거의 공상 수준의 생각을 해본다.







 조건이 1000명/10회로 좋아지고 이를 다 뿌릴 수(casting할 수) 있다면 파워 트위테리언은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계산 상으로는 한 달에 120만원의 수입(1000명 × 4원 ×  10회 × 30일) 을 올릴 수 있다. 애드얌 임직원도 이런 종류의 꿈을 꾸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애드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직 돈을 벌 수 없는 사무실이지만 전화를 놓기로 했다. 
대학 동기생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핸드폰을 많이 쓸 경우 한 달에 10만원 이상 요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선전화를 놓기로 한 것이다. 친구가 대신 전화를 신청해 줬다. 번호는 나왔고,가설은 9일에 할 예정이다. 전화 가설비(가입비)는 6만원이라고 한다. 월 기본요금은 5200원이다. 착신전화 서비스를 추가하면 월 1000원을,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추가하면 월 2800원을 기본료에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착신전화 서비스는 받지 않을 터이니 내가 쓸 전화의 기본요금은 월 8000원이 된다.  개인 명의로 바꿔야 할 핸드폰 약정조건은 더 신중히 생각해 퇴직 때 적용할 계획이다. 

서대문 사거리로 나가 발신자 표시 서비스가 되는 전화기를 샀다. 2만 4000원. 날짜 등을 세팅하고, 알카라인 1.5볼트 건전지 3개를 사 넣었다. 로케트 건전지 6개에 5700원. 모든 걸 내 호주머니에서 빼 써야 한다. 백수의 작은 슬픔이다. 큰 자유를 얻으며 치르는 대가다.   

저녁엔 모교의 단과대학 동창회가 내는 계간지의 편집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계간지 편집인 직무대행(비공식)이기 때문에 회의가 끝난 뒤 신입기자를 따로 만났다. 인사동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편집 때 유의할 사항을 비교적 꼼꼼하게 알려줬다. 더불어 인생을 여러 막(幕)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펼쳐 보여줬다. 이 때문에  이틀째의 '백수일기'를 제 날에 쓰지 못했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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