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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에 해당되는 글 73건

  1. 2018.12.22 [베이비부머 퇴직일기](64) 3년 9개월 만에 다시 쓰는 일기
  2. 2016.07.14 수퍼시니어 십계명
  3. 2015.03.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63)숱한 탐험과정을 헤쳐가고 있구나
  4. 2014.04.21 [베이비부머 퇴직일기](62)나도 혼자할 수 있어요...일본요리학원에 다니다
  5. 2014.02.28 [베이비부머 퇴직일기](61) 58년 개띠 이상에겐 정년연장,'그림의 떡'도 아니다
  6. 2013.07.16 연봉에 따른 실수령액 계산
  7. 2013.06.12 선진국 10개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동영상]
  8. 2013.06.12 은퇴준비...미래에셋 시리즈 편
  9. 2013.06.10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10. 2013.06.06 각종 연금 곶감 빼먹듯 하면 안된다
  11. 2013.04.02 [베이비부머 퇴직일기](60) 치과 비용 등 의료비 부담 크다
  12. 2012.09.18 소득세율
  13. 2012.09.18 비과세소득
  14. 2012.09.18 조기노령연금,2013년부터 수급연령 높아진다
  15. 2011.12.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7)베이비부머, 국민연금 언제 어떻게 타야 할까
  16. 2011.12.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6)베이비부머 대책에 불붙었나
  17. 2011.10.21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5)창업 꿈 접고, 재취업할 수밖에...
  18. 2011.10.09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4)내 몸값은 얼마인가?
  19. 2011.07.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3)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
  20. 2011.01.1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2)2.0추진단 발전적 해체 사진
  21. 2011.01.06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2)오마이포털, 하루 클릭수 3064명...최고기록 경신
  22. 2011.01.06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1)2011년 1월 6일 새벽 2시의 '블로그 반란'
  23. 2011.01.01 [베이비부머 퇴직일기](50)송년회 사진 모음
  24. 2010.12.3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9)정성이 담긴 에쁜 목도리를 선물받았다...세번째 송별모임 겸 송년회
  25. 2010.12.28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8)오마이포털,하루 방문자 최고기록...1650명 넘었다
  26. 2010.12.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7)페이스북의 신경을 끊다
  27. 2010.12.22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6)다음 학기에 겸임교수할 예정
  28. 2010.12.17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5)첫 직장 연합뉴스 창사30주년을 축하하며
  29. 2010.12.1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4)사람은 책을 만들고,책은 사람을 만든다_126년 된 미국 하퍼스출판사 고서(古書)
  30. 2010.12.1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3) 내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들

2015년 3월 중단했던 '베이비부머 퇴직일기'를 다시 쓰게 됐다. 퇴직 일기를 쓸 이유와 여유 시간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동안에도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살았다. 2014년초부터 2년여 동안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창업지원단(창업보육 + 창업교육) 매니저로 일한 뒤, 영어 번역 프리랜서로 2년 여 삶을 꾸렸다. 모두 주변 지인들의 도움 덕분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던 시절이었다. 



이제, 다시 백지 상태로 황야에 섰다. 예전에 생각하기로는 만 60세가 넘으면 집에서도 노인으로 취급 또는 대우해주고, 본인도 일할 생각이 나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남편에 대한 마누하님의 기대는 여전하고, 나의 일벌레 습성도 여전히 꿈틀댄다. 나이가 듦에 따라 소외된다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오히려 일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고 있다. 


참 큰일이다. 기대수명은 날로 늘어나고, 베이비부머가 일해야 할 숙명이 시지푸스(시시포스)의 절벽처럼 다가옴을 절감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을 터다. 


우선 번역 사이트 '플리토'(Flitto)와 다음Tip, 오마이뉴스, 스팀잇 등 머리와 몸을 꼼지락거리면 소액이라도 생기는 일거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다수의 티스토리 등 각종 블로그, 위키트리, 다수의 트위터 등 온갖 SNS도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무료하게 삶을 내팽개치는 것은 결코 내 몫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항상 눈앞에 있다.  연말에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내년에는 과연 무슨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곰곰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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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시니어 10계명>


1.직(職)이 끝났다고 업(業)까지 끝난 것 아니다.

- 직장과 조직에서 밀려나도 좌절하고 낙담만 해선 안된다. 타이틀이 없어져도 업(業)은 살아 있다. 독일어 단어 Beruf(베루프)의 뜻그대로 천직이다.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2. 발 밑을 우선 살피라

-조고각하(照顧脚下). 발 밑을 우선 살피라는 불가(佛家)의 용어. 제2인생 출구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지개의 환상을 좇는 대신, 당신의 발 밑을 조금 더 파봐라. 그 밑에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3.Up 업(業)

-지식,네트워크,기술의 무형자산을 시장이 원하는 유형자산 형태로 갈고 닦아 업그레이드 시켜놓자. 킬러콘텐트가 없으면 1년도 버티지 못한다.


4.나팔

-나팔은 '나를 팔아라'의 준말. 요즘은 자기 마케팅의 시대.나무 밑에서 열매 떨어지길 마냥 기다리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5.플랜B

-플랜B, 즉 차선책을 준배해 두라는 말이다. 2막인생 줄곧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갑질 계속하면 갑갑해 진다. 


6.리셋

-컴퓨터가 망가지면 새로 프로그램 깔듯이 2막인생 앞두고 인간관계를 리셋해 볼 필요가 있다. 전화번호 많다고 절대 자랑할 일 아니다. 


7.명함은 잊어라!

- '아무리 나쁜 직업이라도 무직보다는 낫다'(A bad job is better than no job)는 명언, 놀아보면 실감할 것이다. 2막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은 타이틀 집착과 허세다. 


8.평생학습 

-아날로그시대는 연장자가 유리했지만, 디지털시대는 정반대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먼저 배우자. 나이가 젊다해도 학습을 멈춘다면 그 사람이 '꼰대'다. 


9.유머와 친구 

-너무 진지하고 매사 불만인 사람보다 활력 있고 유머 넘치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다.유머가 있어야 인생엔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10.오늘이 선물이다.

-불만 없는 직장 없고 문제 없는 가정 없다. 인생에 고민 없는 시절이 있었던가.먹구름 몰려와 잠시 쉬게 된다면 시원한 스콜이라고 생각하자.하늘은 다시 맑아질 것이다.  (손관승에게서 배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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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짓누르는 듯한 조직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꾸리겠다며 직장을 박차고 나온 지도 어언 4년 4개월이 지났다.  지나간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니 여러 직종과 일터를 전전한 것 같다. 

 

 

퇴직 후, 아내와 함께 훌훌 떠나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창업준비를 약 1년 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여의치 않은 참에, 작은 벤처기업에서 불러 임원(본부장)으로 일했다. 한동안 일에 파묻혀 살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원 신세를 잠깐 지기도 했다.  

 

 

 

이어 뜻밖의 정치적 활동을 거치면서 멘붕에 빠져 불면에 시달렸다. 멘붕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직장후배가 하는 인터넷신문 겸 주간신문의 일을 몇 개월 도와준 뒤 또다시 '자유인'이 됐다. 이후 대학 강사, 프리랜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대학 창업보육/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널리스트 - 대학 초빙(석좌)교수/강사 - 벤처기업 임원(운영사업본부장) - 프리랜서 연구원(대학 산학협력단)  등 4개 직역을 넘나들었고, 지난해엔 창업보육(BI) 전문매니저 자격증을 땄다. 그야말로 탐험이자 떠돌이 생활이다.

 

 

중간중간에 약간의 우울증을 보이기도 했고, 때론 무심·무망(無心無望)의 상태로 지내기도 했으나 정신을 차려 다시 일을 하곤 했다. 다음과 같은 원로의 글을 보고 다시 활력을 찾았던 것.

 

 

 

<어느 95세 어르신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나는 주변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고 존경을 받았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10년을 아무 할일 없이 보내면서 75세 생일을 맞았으며 
그런 내가 또 다시 10년이 흐른 후인 85세 생일을 맞았고
또 다시10년 후인 95세 생일을 맞으면서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즐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덧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 
가끔 골프나 치면서…
그런 삶을 30년이나 그렇게 보내 버렸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송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 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내 인생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모셔온 글
오늘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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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창업 준비→ 재취업 → 병원 입원 및 휴식 프리랜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30년 가까이 봉직한 직장의 울타리를 벗어난 뒤의 그 3년 여 세월 동안 외로움을 탄 나날들이 적지 않았다. 일정한 사무실에 나가 지낸 때도 많았지만,중간 중간 정처없이 떠돈 적도 꽤 있었다.

 

 

 

 

정처가 없다는 것은 완전 자유롭다는 뜻도 되지만, 매일 얼굴 보고 어울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그야말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내겐 자유= 외로움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비틀거리며 살아온 날들이 워낙 많았던 만큼, 자유로움은 곧 고독감에 다름아니었다.      

 

 

대학 강의와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 프로젝트 수행 등 일을 했다. 지인들의 도움 덕분에 약간의 수입을 올리며 그럭저럭 살아왔으니,아주 비참한 제2의 삶은 아닌 셈이다. 한동안 약간의 우울증 탓에 축 처져 지내오다가 작은 돌파구를 찾았다. 요리학원에 다니기로 한 것이다. 

 

 

 

 

'XX 스시 아카데미'에 4월 21일 오전부터 나가 일식,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스시(壽司,초밥)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생선초밥도 만들겠지만, 웬만한 횟집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일본음식을 모두 배울 참이다.

 

 

 

 

 

 

 

 

요리를 배우기로 한 것은 마누라에게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에서 비롯됐다. 베이비부머인 우리 동기들끼리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농담인 '삼식이'취급을 당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 지름길은 바로 '부엌의 장악'이며, 이는 요리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주변의 몇 사람들에겐 4월 21일이 내가 '초보 일식 셰프'의 길로 접어드는 날이라고  알려줬다.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아직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히라가나,기타가나도 오랜만에 한번 읽어본다. 히라가나는 대충 알겠는데, 가타카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약간 예습했으니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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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방송국에서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 베이비부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다. 어떤 경우엔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공신력 있다고 믿는 매체엔 "응하기 싫다"는 답장이나마  해주지만, 그 외엔 답장조차 주지 않는다. 괜히 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한 방송국에서 이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사이트를 보고, 친구 및 친지들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내가 직접 응하는 것도 싫지만, 남을 소개하는 일은 더욱 싫고 훨씬 더 어렵다. 당연히 불응. 

 

 

 

회사에서 공식 퇴직하기 전, 1개월 동안의 휴가 기간 중 미리 쓰기 시작한 퇴직일기는 60회에 멈춰 있다. 2012년 8월의 일이다. 앞으로 크게 성공할 벤처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던 때다.

 

2010년 11월, 연말 인사를 앞두고 용감하게 퇴직을 한 뒤 창업을 준비하다가 여의치 않아 2011년 가을 재취업한 지 열 달 지나 쓴 게 60회 퇴직일기였다. 당시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일했는데, 일이 너무 많고 쉽지 않았다. 내 성격 상 일을 만들어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2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평형감각에 이상이 약간 생겨 응급실을 찾았다가 '뇌졸중 전구증상'판정을 받았다. 뇌졸중 가운데 뇌출혈이 아니라 뇌경색이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이었다. 그냥 전구증상일 뿐이어서 헤파린 주사약으로 한참 치료받은 뒤 헤파린 경구약을 처방받아 퇴원했다. 

 

그 뒤 신문사 후배의 인터넷신문 창간을 도와주는 등의 일을 하다가, 2013년 후반기부터 한 대학의 산학협력단 프로젝트를 맡아 하면서 또다른 대학에선 강의를 했다. 일하는 내용으로 치자면, 딱 대학교 전임교수에 해당한다. '연구+강의'를 하니 말이다.

 

어느덧 2014년 봄을 앞두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삼성전자가 정년을 올해부터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한다고 한다. 중앙일보 1면 기사엔 '~낀 세대(1959~60년) 구한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그러고 보니 1957년생인 나는 그  '낀세대'도 아니다. 한많은 58년 개띠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프리랜서로 한동안 살다보니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직 젊고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벌써 '나이 차별'을 두려워 할 나이가 됐다는 뜻이겠다. 그러면서도 웹2.0, 소셜미디어에 이어 인포그래픽,빅데이터 등 새로운 것에 계속 관심을 쏟고 있다. 봄을 맞아 다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 오랜 만에 포스팅을 한다. 베이비부머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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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봉이 결정됐다면, 매달 얼마를 받게 될까.

얼추 셈이 나와야 생활의 틀을 제대로 짤 수 있다. 다음은 '사람인'이 제공하는 연봉 계산기(연봉의 실수령액 계산기)다.

 

 

* 실제 계산은 이곳(http://www.saramin.co.kr/zf_user/tools)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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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베이비부머 문제를 겪은 미국을 비롯해 고령사회에 접어든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기획한 'HEYDAY!'시리즈 자료를 모았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도 제2의 전성기,HEYDAY를 구가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독일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일본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영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캐나다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뉴질랜드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싱가포르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덴마크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 미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1)정부기관과 민간단체의 활동

 

 

 

 

 

● 미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2)구체적인 삶의 사례 

 

 

 

 

 

● 미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3)기업의 현장

 

 

 

● 미국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4)베이비붐 세대의 영향력

 

 

 

 

● 프랑스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1)실버산업 현황과 은퇴정책

 

 

 

 

● 프랑스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2)여가와 교육 활동

 

 

 

 

 

● 스웨덴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1)연금 개혁과 노인연금 시스템  

 

 

 

 

 

● 스웨덴 은퇴자들의 인생2막 이야기 (2)여가와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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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장 사표를 써라. 현금으로 지불하라. 은퇴하지 말라.그리고 무엇보다도 다 쓰고 죽어라"  마크 레빈 등 2명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라는 책을 썼다. 

 

이들은 특히 "은퇴는 꿈이 아니라 악몽"이라고 강조한다. 또 "은퇴는 자연스러운 인생주기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사회정책일 뿐이며,개인들에게 축복이기는커녕 불행과 병약함만 갖다 준다"며 "은퇴에 대한 생각을 버리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직업적,경제적 성장을 위해 놀라운 행운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미래에셋이 동영상으로 준비한 '미래에셋 은퇴준비 시리즈'를 보고 은퇴에 대한 갖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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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노령연금을 올해 안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953년생부터 1956년생까지다. 자신의 생일 달이 지나 신청하고 그 다음달부터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1957년생은 지난해엔 받을 수 있었으나,올해엔 받을 수 없게 됐다. 관련 법령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957년생 닭띠는 만 57세 이후에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따라서 2014년 자신의 생일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2013년부터 적용)

 출생연도  1953~1956 1957~1960  1961~1964  1965~1968  1969년생 이후 
 노령연금  61세  62세   63세  64세   65세 
 조기노령연금  56세 57세 58세 59세 60세

 

 

 

 

1953~1956년생이라고 누구나 다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돈을 너무 많이 벌면 안된다. 법령이 정한 한도 내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만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해 받을 수 있다.  

 

이 연령대의 사람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지 10년 이상 됐고 이른바 '소득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있으면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소득이 있는 업무'란 월평균 소득금액이 '최근 3년간의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월액의 평균액'(2012년 기준 월평균 189만1771원, 2013년 약 193만5977원) 을 넘는 경우를 말한다.

 

이 대목이 중요! 

 월평균 소득금액은 부동산임대소득 금액(필요경비 공제 후), 사업소득 금액(필요경비 공제 후), 근로소득 금액(근로소득 공제 후)을 합친 금액을 그해 근무(종사) 한 월수로 나눈 금액이다. 

 

필요경비를 공제하거나 근로소득공제를 한 뒤의 소득이 월 193만 5,977원(2013년의 경우)을 넘지 않으면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금액은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 근로소득공제 하기 전의 월 291만4974원(연봉 기준 3,497만 9693원) 에 해당한다. 

 

이런 조건에 맞아 조기노령연금을 받다가, 이 기준 이상의 월평균 소득이 있는 일자리를 얻은 만61세 미만의 사람에겐 조기노령연금의 지급이 정지된다. 그러나 만 61~65세의 경우엔 연금 수급률이 줄어들 뿐이다. 만 66세 이상의 경우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연금 전액을 받을 수 있다. 

 

 

 

조기 노령연금은 연금 수급(지급) 연령에 따라 지급률이 달라진다. 만 60세는 기본 연금액(61세부터 받을 경우의 금액)의 94%, 만 59세는 기본 연금액의 88%, 만 58세는 기본 연금액의 82%, 만 57세는 기본 연금액의 76%, 만 56세는 기본 연금액의 70%(연령 도달 생일을 초과하는 매월 0.5% 가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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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연금,주택연금(역모기지),개인연금 등에서 돈을 일시적으로 빼내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병원비 등 급박하게 마련해야 할 목돈을 빼내 쓰고 나눠 갚는 식이다. 애써 모아놓고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쉽게 빼먹는 셈이다.

 

이런 행동은 마지막까지 피해야 한다. 특히 혼자 살 경우엔 본인, 부부가 함께 살아 있을 경우엔 부부 외에 어느 누가 부탁해도 이런 '곶감 빼먹기'는 해선 결코 안된다. 노후를 버텨나가는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연금의 성격에도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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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 마누하님에게  "이빨이 아픈데 돈이 없어 치과 가기 힘들 때까지는 결코 살고싶지 않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때마다 그녀는 "뭐, 치과 비용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 말뜻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다. 시시때때로 금니를 씌우거나 ,때우거나, 임플란트 수술을 받다보니 치과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간다. 치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통증을 느끼거나,음식 씹기가 불편하거나, 보기가 싫거나 하기 때문에 치아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따라서 치과비는 퇴직자에게 필수 지출항목이다. 60 전후의 나이에도 치과 신세를 지지 않는다면 큰 행운이다.   

 

 

 

몸에 큰 병이 생겨 입원해 수술 등 진료를 받는 경우보다는 훨씬 더 운 좋은 일이긴 하나, 치통이 부르는 고통지수도 사실 엄청 높게 마련이다. 그러니 150만원 안팎에 달하는 임플란트 비용을 몇 개월 할부로 나눠내더라도 당장 생활비에 압박이 가해진다. 

 

 

 

퇴직 전에 이런 의료비를 따로 챙겨둬야 하는데, 그 땐 절박함이 없다. 나만큼은 항상 힘이 넘치고 건강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생활비에서 뚝 떼어 적금이라도 들만큼 풍요롭지도 않았던 게 현실이다. 

 

 

 

젊어서 그런 대비를 전혀 안했다면 퇴직 후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해서 용돈 정도는 벌더라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고교,대학 동기들을 살펴보면 상당 비율에서 그런 베이비부머의 애잔함이 조금씩 배어있다.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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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율

베이비부머 / 2012. 9. 18. 17:59




2012년의 소득세율은 다음과 같다. 



과세표준 1200만원이하 = 6%

과세표준 1200만원초과~4600만원이하 = 15%

과세표준 4600초과 ~ 8800이하 = 24%

과세표준 8800초과 ~ 3억이하 = 35%

과세표준 3억초과 = 38%



과세표준은 각종 공제사항을 소득에서 차감한 금액이다. 

기본공제 200만 원 등 각종 공제 항목을 뺀 것이다. 


각종 공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홈텍스 http://www.hometax.go.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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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세소득

베이비부머 / 2012. 9. 18. 17:56

조기노령연금을 계속 받으며 썩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어도 행복이다. 


참고자료 : 비과세 소득의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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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957년생의 경우,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62세 이전이라도 소득이 낮은 경우

  조기노령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 

 * 소득이 있는 업무 기준

  - 월평균 소득금액 : 1,891,771원 이하(근로소득만 기준으로 한다면 근로소득 공제 전 월 2,856,856원)

  - 월평균 소득금액이란 부동산임대소득금액(필요경비 공제 후), 사업소득금액(필요경비 공제 후),

     근로소득금액(근로소득공제 후)을 합산한 금액을 당해연도  근무(종사)월수로 나눈 금액을 말한다.

 

 하지만 내년부터  조기노령연금 수급연령은 1957년생의 경우 2년 더 높아진다. 따라서 만 57세(2014년 자신의 생일 달)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민연금콜센터(국번없이 1355)나 가까운 국민연금 지사에 직접 전화(본인확인) 하면

조기노연연금과 예상 연금(정상 연금)액과 연금 청구 시 필요한 서류를 안내 받을 수 있다. 


 

2013년부터 노령연금 및 조기노령연금을 받은 수 있는 연령이 다음과 같이 바뀐다.


출생연도

19531956

19571960

19611964

19651968

1969년생이후

조기노령연금

56

57

58

59

60

노령연금

61

62

63

64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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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국민연금의 출범 때부터 버젓한 직장에 줄곧 다니면서 연금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낸 베이비부머(1963~1955년 생)들이 뜻밖에 많지 않다.

늙어서 어려울 때 큰 힘이 되는 국민연금(노령연금,조기노령연금), 과연 어떻게 받는 게 나에게 유리할까.

가능한 한 버텨서 '늦게 많이' 받는 게 바람직하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안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상책이다.  

 


[1] 노령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
 

 국민연금보험료를 10년 이상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은 눈 꼭 감고, 퇴직금의 일부를 뚝 떼어 내야 한다. 그래야 연금을 웬만큼 받아 노후에 호주머니가 비지 않게 된다. 종전엔 이렇게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1년 분밖에 미리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 내년에 '국민연금보험료 5년 선납제도'가 도입된다. 예컨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5년 밖에 안되는 사람이 은퇴해 퇴직금으로 5년치 보험료를 미리 내면 5년 이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연금수급연령, 출생년도에 따라 다르다)가 되면 매달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2]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적게 받고, 더 늙으면 많이 받고 싶은 사람들  
 

만 60세 이상으로 연금수급연령이 됐더라도, 경제활동으로 돈을 꽤 벌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젊었을 땐 연금의 일부만 받겠다고 신청하는 게 좋다. 1955년생으로 연금액이 80만 원인 사람이 만 61세부터 5년 동안 40만 원만 받겠다고 신청할 경우, 66세 이후엔 월 96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내년 6월 임시국회 때 관련 법령이 고쳐져 시행된다. 






[3] 국민연금보험료를 20년 이상 냈고, 조기노령연금을 받고 싶은 사람들

1988년 1월 국민연금에 들었고, 20년 이상 최고수준의 국민연금 월소득 기준액(월 360만원)에 해당하는 연금을 꼬박꼬박 냈다면 제2의 인생에 접어든 베이비부머는 지금 당장 조기노령연금을 받더라도 월 80만원 안팎을 손에 쥘 수 있다.

베이비부머 가운데 1955년생부터 1957년생까지는 만 55세가 된 달의 다음달 말일부터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손에 쥐는 월 소득이 182만 여 원(2011년의 경우, 근로소득자의 경우 세금을 내기 전에 받는 월소득은 이보다 상당히 더 높다. 2011년의 경우 월 279만 여 원)에 못미치면 조기노령연금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단, 월소득 기준을 초과할 경우엔 60세까지 조기노령연금의 지급이 중단되므로, 이에 따라 큰 손해를 볼 수 있음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러니 만약 자영업이나 근로에 종사해 매월 180만 원(세후 소득)을 손에 쥐는 베이비부머가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경우 한 달에 260만원(180만원+조기노령연금 80만원)을 소득원으로 삼아 생활할 수 있다.

이 돈을 기본으로 하고, 벌어놓은 돈이나 집을 담보로 돈을 좀 빌려 생활비와 자녀 학비로 조금씩 쪼개 쓴다면 꽤 여러 해 동안 버틸 수 있다. 물론 몇 년 뒤엔 자녀가 취업에 성공해야 한다. 결혼 자금은? 그런 건 아직 생각할 처지가 못된다. 다음은 긁어온 정보. 





올해 말 퇴직을 앞두고 있는 55세 김 모 씨. 2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나오는 퇴직금과 약간의 임대소득 외에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 걱정이다. 
55년생인 김 씨는 직장생활 중 납부한 국민연금을 만 61세부터 받게 된다. 하지만 일정 금액 이상 소득이 없어 조금 적게 받더라도 만 55세부터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할 수도 있다.

 

김 씨처럼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55년생~63년생)가 2010년 712만5437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을 주도했던 이들은 총 인구 비중에서도 약 14.6%를 차지한다. ‘55세 정년퇴직’을 하는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본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700만 명 이상이 은퇴를 하는 것이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시행하는 노후소득보장제도로 만 18세~60세의 국민이 소득의 일정부분을 납부하고(현재 9%) 노령, 장애, 사망 등의 위험에 처했을 때 연금으로 지급받는 사회보험이다. 기본적으로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은 만 60세이후부터다.(출생년도에 따라 60세~65세)

 

하지만 퇴직 후 소득이 전혀 없거나 당장 생활비가 필요하다면 만 55세부터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조기노령연금은 만 55세부터(출생연도에 따라 55세~60세) 일정금액 이상의 소득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신청이 가능하다.

52년생 이전

53~56년생

57~60년생

61~64년생

65~68년생

69년생 이후

일반 노령연금

60세부터

61세부터

62세부터

63세부터

64세부터

65세부터

53~57년생

58~61년생

62~65년생

66~69년생

70~73년생

74년생 이후

조기노령연금

55세부터

56세부터

57세부터

58세부터

59세부터

60세부터

조기노령연금은 일반 노령연금 수급시기보다 5년 일찍 신청하면 기본연금액의 70%를 받고, 4년 일찍 신청하면 기본연금액의 76%를 받는 식으로 1세 증가할 때마다 6%씩 늘어난 지급률로 받는다.(신청한 달에 따라 한 달에 0.5%씩 가산)

신청 연령

산정 기준

55세 1~11개월

기본연금액×70~75.5%+부양가족연금액

56세 1~11개월

기본연금액×76~81.5%+부양가족연금액

57세 1~11개월

기본연금액×82~87.5%+부양가족연금액

58세 1~11개월

기본연금액×88~93.5%+부양가족연금액

59세 1~11개월

기본연금액×94~99.5%+부양가족연금액

60세

기본연금액×100%+부양가족연금액

예를 들어 55년 1월생인 사람이 내년 3월에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면 기본연금액의 71%(70%+0.5%×2개월)를 받게 된다.

하지만 조기노령연금은 신청한 시점의 지급률이 사망시까지 고정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또 조기노령연금을 받다가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활동을 하게 되면 60세 이전에는 연금 지급이 정지되고 60~65세까지는 재직자노령연금을 받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활동이란 근로소득금액, 부동산임대소득금액, 사업소득금액을 합산한 금액을 근무월수로 나눈 값(월 평균 소득금액)이다. 2009년에는 이 금액이 175만 원보다 많으면 조기노령연금 지급이 중지된다. 또 175만 원이라는 기준 금액은 매년 조정된다.

그렇다면 55세부터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해서 받는 연금액과 60세에 일반 노령연금을 신청해서 받을 수 있는 총 연금액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조기노령연금

일반 노령연금

월 연금액
(신청 첫 달 수령액)

551,369원

787,670원

총 연금 수령액
(기대여명 기준)


(80세까지 수급 가정)

165,410,700원

189,040,800원


(85세까지 수급 가정)

198,492,840원

236,301,000원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 노령연금을 받을 경우 조기노령연금보다 남성의 경우 2천360여만 원(80세까지 받는다고 가정), 여성의 경우 3천780여만 원 이상(85세까지 받는다고 가정)을 더 받는다. 조기노령연금이 일반 노령연금보다 5년을 먼저 받지만 지급률이 일반 노령연금보다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년 반영되는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한다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또 기대여명을 남성 80세, 여성 85세로 계산했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 사망시까지 받는 총 연금액은 일반 노령연금이 훨씬 더 많다.
결국 55세 이후 어려운 상황이라면 조기노령연금 신청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좀 더 여유 있게 연금을 받고자 한다면 60세 이후 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10년 미만의 가입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은 보험료라도 무조건 10년을 채워놓는 것이 좋다.보험료 납부기간이 10년 미만인 채로 60세에 이르면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정기예금 이자를 더해 일시금으로 받지만 10년 이상만 되면 매달 연금으로 평생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0년 이상 납부했다고 하더라도 생계를 꾸려가는데 큰 문제가 없고 길어진 노후를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보내고자 한다면 적은 보험료라도 납부해서 납부기간을 연장하는 게 좋다. 국민연금은 본인이 납부한 총 기간과 매달 납부한 금액을 합산하여 기본연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4] 복지전문기자의 분석 
조선일보 김동섭 복지전문기자의 분석입니다. 

[김동섭 복지전문기자의 심층 리포트] 퇴직 베이비부머들 "생활비 급해… 30% 깎여도 국민연금 미리 타자" (바로가기)




[5] 재직자 노령연금에 대한 설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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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의 일이다. 한 방송국의 경제부 기자에게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베이비부머에 관해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날 취재대상의 하나로 찍었음을 알았다.


그 여기자는 연락을 부탁한다며 핸드폰번호를 남겼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취재기자 출신은 스스로 취재 대상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 남에게 묻고, 따지고, 기사를 쓰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쪽이 팔리는 걸 싫어한다. 또 내가 베이비부머로 제2의 인생에서 무슨 열매를 맺기 전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베이비부머 문제가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올랐음을 절감한다. 아마도 연말연시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이들이 창업이나 재취업에 나서게 되면 베이비부머 문제의 심각성이 더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 큰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 노후대책이나 일 대책이 없는 데다 불황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찬바람이 쌩쌩부는 허허벌판에 서있다.


88만원 세대와 베이비부머 대책은 이제 발등의 불이다. 이 문제의 실체를 잘 파악하고 적절한 대책의 그림을 잘 그리는 게 현실 정치의 요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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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논리에 따라 정든 회사를 떠난 지 11개월이 다 됐다.
올해 전반기엔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창업이든,재취업이든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역량 강화에 힘썼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지극히 어렵다는 걸 느꼈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진 않았으나, 쓸 만한 기업에선 입질이 없었다. 창업도 결코 여의치 않았다. '돈'이 보이지 않으니 섣불리 '돈'을 지를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 먹여 살리고, 나도 먹고 살기가 녹록치 않음을 절감했다.

앞길이 막막하고 어둠이 언제 걷힐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차에, 지인의 제의로 지난달 '재취업 반쪽 + 내 비즈 반쪽'의 그림을 그려 마포 사무실에서 을지로3가 사무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달 사이에, 베이비부머에겐 꽤 괜찮은 재입사 제안이 몇 건 들어왔다.




고민 끝에 지인의 호의적인 양해를 얻어 어느 한 곳에 재취업하기로 결심했다. 내 캐리어를 적절히 살릴 수 있고, 큰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갈 인물이 있는 조직으로 판단해 다시 '마름'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스톡홉션의 대상자가 되고, 성과급도 받을 수 있다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스마트하게 일해 볼 생각이다.

만 54세의 적지 않은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일할 수 있게 해 준 분이 참 고맙다. 그리고 놀랍다. 내가 그 사람의 나이와 비슷한 오너라면, 나같은 조건의 중고령 인력을 채용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으니,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회사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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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로 샐러리맨들이 파리 목숨이었던 1998년 초의 일이다. 나는 10년 선배가 떠나는 자리를 메우는 인사의 대상자가 됐다. 몸 담고 있던 신문사의 지방본부장으로 발령받아,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고향에 단신 부임했다. 가족은 분당의 한 아파트에 남아 있었다. 회사가 제공하는 방 3개 짜리 아파트에 짐을 풀고, 신문사 사인보드가 붙은 지프차를 타고 출퇴근했다.

이에앞서 서울을 출발해 지방본부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주재기자들을 만난 뒤, 본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엔 매일 20만 부 이상을 찍을 수 있는 공장이 지방본부 내에 있었다. 미리 도착 시간을 알리고 본부에 갔다. 공장장과 직원들, 판매지사 근무자, 식당 근무자 등 수십 명이 차렷자세로 도열해 있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라 좀 놀랐다.

며칠 지나 그 지역에 주재하는 중앙일간지의 지방본부장들과 식사를 하게 됐다. 모두들 연배가 나보다 10년 안팎 더 많았다. 그러니 그 분들과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었다. 도지사,시장 등 지역유지들과 식사를 할 때도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한 두 다리 건너면 모두 학연과 지연,그리고 관계에 얽혀 있는 만큼, 서울에서 행동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신문사가 당시엔 언제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르는 불안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신문사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모든 직장이 다 그랬다. 과연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일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가시방석에 앉은 직장인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풍전등화)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들어온 샐러리맨들의 그 참혹한 심정에서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전방에서 근무하다 정보를 다루는 기관으로 옮긴 고교 동기생이 찾아왔다. 그 친구도 서울에서 근무하다 나보다 좀 늦게 지방으로 발령받아 나와 같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물음을 던졌다. "야, 네가 취업시장에 내던져 졌을 경우 몸값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 난데없이 엉뚱한 질문을 받은 그 친구는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 몸값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거기에 나도 동의했다. 언론기관과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내동댕이쳐친다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사회에서 무슨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둘 다 품고 있었던 것이다.

2년 뒤 나는 서울 본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10년 이상을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으로 옮겨가며 일했다. 그와 서울에서 다시 만난 건 둘다 직장을 떠나기 2년 쯤 전이었다. 내 친구는 농삿꾼으로 완전 변신을 꾀하고 있다. 경매로 지방에 산 땅에 묘목을 심어 가꾸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반면 난 온라인에서 길을 찾고 있다. 신문사 그룹의 웹 2.0TF 팀장으로 오픈 소스(API)인  '미디어 위키'를 뜯어 매시업해 사이트를 2개 만들고 각종 사업을 벌이는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신문사 문화재단에서 석좌기금을 받아, 직장을 휴직하고 명문 사립대학 신방과에서 초빙교수로 1년을 보냈다. 대학 측의 배려로 젊은 교수 2명이 쓰던 연구실을 혼자 넓게 쓰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강의 준비와 학생 지도에 힘을 쏟았다. 그 시절, 난 컴퓨터학원(8개월) 과 온라인사이트를 통해 웹디자이너 과정과 웹프로그래머 과정을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아직도 실무를 직접 하진 못한다. 그게 상경계열을 나와 신문기자를 오래 한 중년의 한계다.

1998년 이후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은 한결같았다. "취업시장에 내던져진다면 네 몸값은 얼마냐? " 첫 물음을 화두처럼 던진 당시로부터 무려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몸값 평가에 불리할 건 뻔하다. 나이 탓에 재취업이 어렵다고 판단해 한동안 창업을 준비하다 '영업'이 보이지 않아 최근 시장에 나를 본격적으로 내던져 보았다. 몸값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 시각엔 엉터리 같은 회사들이 많이 접촉해 왔다. 하지만 꽤 쓸만한 회사 두 곳에서 제의를 받았다. 눈높이를 바짝 낮춰서 그런지, 내 몸값이 그런대로 괜찮음을 알았다. 비교적 많은 연봉을 꽤 오랫동안 받은 데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아직 그래도 쓸 만한 모양이다.

그건 내가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다. 오랜 신문기자 생활로 콘텐츠를 아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어림없다. 인터넷신문을 비롯한 사이트를 직접 운영할 줄 안다. 또  html+css부터 기본 프로그래밍까지 해봤다. 구글플러스(서클 회원 최대한도 5000명 달성)와 페이스북을 왕성하게 운영하고 있다. 전문 블로그인 티스토리.이글루스와 조인스 블로그(누적 방문자 411만 명) 등 블로그를 다수 운영하고 있다. 필요하다고 판단한 카페도 몇개 열어 놓았다. 그리고 다수의 트위터를 만들어 팔로어를 총 6만 5000명 확보하고 운영 중이다. 그래서 내 몸값이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이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기지개를 크게 한 번 켜고 움직일 때다. 어려울 때 힘이 돼 준 고용보험에 감사를 드려야 겠다. 다음 주, 마지막으로 강남고용센터에 간다. 따뜻하게 대해준 담당자 두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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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지도 어언 8개월이 다 돼 간다. 회사를 떠나기 전에 한 달 간 휴가를 얻어 사업하는 대학동기들의 사무실 한켠에 둥지를 틀었다. 그 뒤 닷컴-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모바일을 잇는 개인 플랫폼을 완성했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트위터엔 각별히 신경을 썼다. 퇴직 전에 계획했던 '1인 방송국'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이와함께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6월 중순 대학의 강의가 끝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참 바쁘게 산다고 살았다.




그런데 대학의 수강생 성적을 다 제출한 뒤, 돌연 슬럼프에 빠졌다. 내가 빠져나갈 터널 끝을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더니, 회사 문밖으로 나서니 참 힘들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 부딪히는 현실은 훨씬 더 가혹하다. 누구 말대로 '찬바람이 쌩쌩 분다'. 닷컴을 함께 꾸릴 사람을 구하기조차 힘들다. 커다란 조직에서 사는 게 얼마나 폼나고 쉬운 일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있을 땐 조직 스트레스 탓에 끙끙댔지만, 속박을 훌훌 털고 몇 달 간 맘껏 누린 자유는 이제 그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누렇게 되기 전에 나름대로 푸르른 빛을 찾아야 할텐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게 베이비부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작은 업(業)을 이루기가 이토록 힘든 줄은 사실 몰랐다. 내 직업의 본령을 훌쩍 뛰어넘는 분야에 꽤 많은 힘을 쏟았지만, 그 구슬들이 제대로 꿰어지지 않는다.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걸 6월부터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친구나 친지들은 말한다. "2년은 지나야 뭔가 된다"고. 하지만 그 기간이 길기도 하거니와, 적지않은 나이 탓에 전망이 썩 밝지 않다. 이리저리 주판알을 튕겨보지만 2년후의 모습이 핑크빛을 띠지 않는다. 

앞날이 그토록 험난하다면, 남은 삶의 계획을 확 뒤집을 수밖에 없다. 끙끙대기보다는 즐기고, 모으기보다는 쓰고, 받기보다는 나누고,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몸을 낮춰 숨어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아직 살 날이 꽤나 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내 불안감과 슬럼프의 원천이다. 옆지기는 제주도 둘레길과 숲길, 전국의 유명 사찰 등으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한다. 재직 때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통했던 자동차 무면허자에서 탈피해보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아직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2년 이상에 걸쳐 제2의인생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이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 내 인생은 종치지 않았다. 액티브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서 기지개를 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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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2.0추진단이 '발전적 해체'를 선언했다. 내가 고려대학교 언론학부(현 미디어학부) 신문방송학과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2007년 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벤처'였다. 실험정신을 조직에 심어봤다는 데 뜻이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다. 이 세상에 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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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1월 6일 오후 11시 35분 현재,오마이포털 클릭수 3064명. (자정 3075명)
최고 기록 경신. 
이전 기록은 1650 명. 

2.
우리집 '연예인' 계약 설명 듣기 위해 연예기획사 방문. 
봄이 아니라 가을에 데뷔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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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2011년 1월 6일 새벽 2시의 반란'으로 명명했다. 
며칠 전 클릭 수 1650을 기록한 뒤, 새벽 2시가 지난 뒤 두번 째로 클릭수 1000을 넘어서고 있다. 새벽 2시 58분 현재 1,153이다.  전체 랭킹은 900위 안팎에서 며칠 째 맴돌고 있다. 좀 피곤했다. 하지만 난 블로그로 석사학위 노문을 쓴 작자가 아닌가.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 '블로그 마실'도 못돌고 있으나 조만간 실행할 계획이다. 복수의 블로그,복수의 트위터,페이스북,독서,웹서핑 등 하는 일이 너무 많아 회사 다닐 때보다 2~3배 더 힘들다. 하지만 이 고비를 참아 넘겨야 한다. 시행착오를 여러 각도에서 '찬란하게' 거쳐야 한다. 꾸준한 포스팅이야말로 블로거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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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이또한 지나가리라. 


2010년 송년회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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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 째 송별회 겸 송년회에서 목도리를 선물로 받았다. 회색의 레노마 목도리다. 정말 예쁜 엽서와 함께 준 선물이어서 주는 이의 정성이 가슴에 와닿는다. 고맙다. 선물을 준 사람은 내가 미래의 지도자로 꼽은 위스타트운동본부의 여성 팀장이다.

1,2차에 이어 3차 호프집까지 같이 가줘서 참 고마웠다. 2010년 겨울은 내게 일대 전환기를 맞은 중요한 계절이다. 일일이 인사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는데 수십 명이 세 차례에 걸쳐 송별회를 열어줬다. 세번 째는 송년모임을 겸한 것이라, 마음에 쏙 드는 순수한 송별회는 아니다.





하지만 정성과 고민이 담긴 목도리를 선물받아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세번 째 모임을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앞날에 영광이 깃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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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지 1개월이 다 돼 간다. 그리고 1차 프로젝트 '스스로를 고용하라'의 제1단계를 밟기 시작한 지 2개월이 됐다. '스고' 1단계는 복수의 블로그 바닥에 콘텐츠로 까는 것이다. 콘텐츠의 질은 낮은 편이지만, 그동안 힘겹게 블로그의 폴더에 콘텐츠를 채워넣었다. 


조인스블로그의 경우 누적 방문자수를 약 400만명으로 키웠으나, 최근 수개월 동안 거의 포스팅하지 않았다. 티스토리에 내 인생을 모두 건 것처럼 두 달 동안 매달렸다.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지금도 그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은 마포 사무실에 나갔으나 종일 땡땡이를 쳤다. 눈도 소담스럽게 내리는 데다,무엇보다도 퇴직후 피로가 누적돼 포스팅을 하지 않고 눈팅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들어 '오마이포털'의 방문자수가 부쩍부쩍 늘었다. 확인해 봤더니 드라마 여주인공 2명의 매력포인트를 비교한 포스팅이었다. 성형외과 의사의 분석 글을 다소 손질해 올린 것이다. 

어쨌든 2010년 12월 28일 오후 11시 11분 현재, 블로그 '오마이포털' (bellring.tistory.com 또는 icharm7.com)의 방문자 수가 이 블로그 개설 이후 처음으로 1000명을 훨씬 더 넘어섰다. 자정엔 1658명으로 마감.쌓이고 쌓인 피로가 상당히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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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리케이션 '트위터피드'와 티스토리 자체 플러그인을 사용해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으로 글보내기를 계속해오다 이를 중단했다. 연결장치를 과잉으로 써서 페북에 중복표현 되는 걸 일일히 삭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앤 것이다. 


게다가 팔자 좋게 페북에 몰빵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시간을 잘 쪼개쓰고, 일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과로사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유를 얻었다는 행복감으로 일을 과다하게 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일의 노예가 돼가는 것 같아 1차 프로젝트 자체를 크게 손질할 수밖에 없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퇴직했는데, 일 스트레스에 짓눌려선 안된다. 포스팅에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도 하나 둘 발견하고, 퇴직 전에 계획했으나 깜빡 잊고 있던 몇몇 툴을 떠올리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런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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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에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한 과목 맡을 것 같다. 지난해 초빙교수로 1년을 캠퍼스에서 평화롭게 보냈던 고려대학교의 인재들만큼 우수한 학생들은 아니지만, 아직 젊은 만큼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으므로 착실하게 준비해 열성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겸임교수의 강의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적다. 하지만 한 학기만 할 것이니 자원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잘 가르쳐 보겠다. 지난해 가르쳤던 과목과는 영 딴판이어서 연구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20일엔 회사 후배들의 두 번째 송별회를 치렀고, 21일엔 고교 때의 친한 친구에게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 술자리를 가졌다. 친구의 건배사가 웃겼다. "사회로의 첫 진출을 축하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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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첫 사랑은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한다.  첫 직장도 그렇다. 설령 아무리 애증이 교차하더라도 그리운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12월 17일은 연합뉴스의 30번 째 생일이다. 예년엔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불과 4년 여 편집국에서 일하다 다른 신문사로 옮겼기 때문이다. 신원조회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합격해 입사한 취재기자 동기 7명 가운데 연합뉴스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3명밖에 없다. 한 명은 매우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나머지 4명 가운데 한 명은 일찍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지금 대학교수로 있다. 그리고 다른 신문사로 옮긴 3명은 모두 야인이 됐다. 예약된 치과 진료를 오전에 받고 사무실로 나와 지금까지 혼자 텅빈 공간에 앉아 있다. 오늘은 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사실 두 번 째 회사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일했다. 그리고 그런대로 잘 해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제2의 인생을 다소 빨리 시작하기 위해 17일 전  회사를 떠났다. 다른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정년까지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연하지만 원대한 꿈을 안고 들어간 첫 번 째 회사나, 자식들을 성인으로 무사히 키우게 해 준 두 번 째 회사나 모두 잘 되길 빈다. 나도 꿋꿋하게, 쉽지만은 않은 세컨드 라이프의 길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신이여, 두 회사에 큰 축복을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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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책은 사람을 만든다."
최근 몇 달간 자주 찾는 교보문고 입구에 쓰여진 문구다. 오늘은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느긋하게 고서(古書)를 뒤적여 본다. 한참 먼지를 털고 있는데, 같은 사무실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뭐 하냐? 안 나오냐? "
"미쳤냐.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거기 가게?" 
"... 그래, 잘 쉬어..."






통쾌하다. 자유인으로서 맛볼 수 있는 작은 행복감이다. 대관령 칼바람은 내가 택해 맞으러 가는 것이니 겨울 등산은 즐겁다. 하지만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메마른 칼바람은 내가 원치 않는다. 때문에 오늘은 집에 있다. 마누하님이춥다며 입으라고 챙겨준 목 있는 폴라도 옷걸이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다.


집이나 책방에서 고서(古書)를 들여다 볼 때마다 신비의 세계로 푹 빠져들곤 한다. 원두커피의 진한 향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낡은 옛 책의 향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소장하는 고서를 들여다 본 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회사 생활이 여유없이 빡빡하게 돌아가기 때문이었을 터다. 

내 고서는 미국 하퍼스 출판사(현재의 하퍼스 바자 출판사의 전신인 듯)가 1884년에 펴낸 '윌리엄 블랙'시리즈 27권이다. 대한제국에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해다. 그러니 올해로 126년 된 '영어판 고서'인 셈이다. 출판 세월의 유구하고 장구함에 상념이 머문다. 
   





27권의 126년 된 영어판 고서에 꼽사리를 낀 책이 하나 있다. 이 녀석은 카펜터 출판사가 1934년에 펴낸 '아라비아 사막의 어린 친구들'(Our Little Friends of Arabian Desert)'이라는 책이다. 우리 어머니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것이다. 이 책에 쓰인 영문은 썩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손가락이 가는 대로 한 페이지를 펼쳐 읽어본다. 베두인 소년 아디와 소녀  함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커피 한 잔을 내가 직접 만든 탁자에 놓고 홀짝거리면서 고서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가장 추운 날 집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은퇴 후의 멋과 맛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하고픈 일들이 너무 많다. 경제적 여유라지만 뭐 그렇게 대단한 여유도 아니다. 안개 같은 불확실성이 걷히고, 작은 돈이라도 비교적 규칙적으로 버는 게 확실해 지면 곧장  '즐기는 모드'로 돌입할 작정이다. 조만간 그럴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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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건강을 잃으면 안되니, 속도 조절 좀 하게."
더 일찍 퇴직한 한 선배가 오늘 저녁에 휴대전화를 걸어 조언했다. 사실 이런 우려는 꽤 많다.

건네준 명함을 보고 사이트에 들어와 봤거나,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내가 시도때도 없이 온라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대학 동기는 수차례에 걸쳐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열심히 책 읽고, 성실하게 일하니 잘 될거야. 그런데 빨리  잘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너무 갖지는 말아라." 

참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난 이런 정 깊은 조언에도 맞장구치지 않는다.
"회사 그만두고 완전 무명이 됐으니, 불도저처럼 밀고 가야 돼. 강박관념 할아버지라도 난 지금 그게 필요해."

사실, 좀 힘들다. 하지만 그걸 쉽게 내색하긴 싫다. 자청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으니까. 퇴직 후 사들인 책만해도 수십 만원 어치에 달한다. 이 책을 읽고,생각하고,메모하고,웹서핑하고,신문 읽고,포스팅하고....

오늘 아침엔 사무실 친구들과 함께 곧 나올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도 갔다. 사무실에는 내 마음대로 나오든지,재택근무하든지 자유롭다. 그리고 홀가분하다. 하지만 일은 무척 많다. 내 팔자거니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컴퓨터에 하루 종일 붙어살다시피하는 행동이 목,허리,눈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좀 써야 겠다. 그리고 산에도 좀 가고, 산책은 여전하게 하고... 

한 두달 더 지나면, 여러 모로 여유가 생길 것으로 기대해 본다. 다음달 이탈리아로 여행가기 전엔 약간 심하게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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