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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짓누르는 듯한 조직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꾸리겠다며 직장을 박차고 나온 지도 어언 4년 4개월이 지났다.  지나간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니 여러 직종과 일터를 전전한 것 같다. 

 

 

퇴직 후, 아내와 함께 훌훌 떠나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창업준비를 약 1년 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여의치 않은 참에, 작은 벤처기업에서 불러 임원(본부장)으로 일했다. 한동안 일에 파묻혀 살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원 신세를 잠깐 지기도 했다.  

 

 

 

이어 뜻밖의 정치적 활동을 거치면서 멘붕에 빠져 불면에 시달렸다. 멘붕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직장후배가 하는 인터넷신문 겸 주간신문의 일을 몇 개월 도와준 뒤 또다시 '자유인'이 됐다. 이후 대학 강사, 프리랜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대학 창업보육/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널리스트 - 대학 초빙(석좌)교수/강사 - 벤처기업 임원(운영사업본부장) - 프리랜서 연구원(대학 산학협력단)  등 4개 직역을 넘나들었고, 지난해엔 창업보육(BI) 전문매니저 자격증을 땄다. 그야말로 탐험이자 떠돌이 생활이다.

 

 

중간중간에 약간의 우울증을 보이기도 했고, 때론 무심·무망(無心無望)의 상태로 지내기도 했으나 정신을 차려 다시 일을 하곤 했다. 다음과 같은 원로의 글을 보고 다시 활력을 찾았던 것.

 

 

 

<어느 95세 어르신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나는 주변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고 존경을 받았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10년을 아무 할일 없이 보내면서 75세 생일을 맞았으며 
그런 내가 또 다시 10년이 흐른 후인 85세 생일을 맞았고
또 다시10년 후인 95세 생일을 맞으면서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즐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덧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 
가끔 골프나 치면서…
그런 삶을 30년이나 그렇게 보내 버렸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송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 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내 인생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모셔온 글
오늘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Posted by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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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창업 준비→ 재취업 → 병원 입원 및 휴식 프리랜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30년 가까이 봉직한 직장의 울타리를 벗어난 뒤의 그 3년 여 세월 동안 외로움을 탄 나날들이 적지 않았다. 일정한 사무실에 나가 지낸 때도 많았지만,중간 중간 정처없이 떠돈 적도 꽤 있었다.

 

 

 

 

정처가 없다는 것은 완전 자유롭다는 뜻도 되지만, 매일 얼굴 보고 어울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그야말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내겐 자유= 외로움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비틀거리며 살아온 날들이 워낙 많았던 만큼, 자유로움은 곧 고독감에 다름아니었다.      

 

 

대학 강의와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 프로젝트 수행 등 일을 했다. 지인들의 도움 덕분에 약간의 수입을 올리며 그럭저럭 살아왔으니,아주 비참한 제2의 삶은 아닌 셈이다. 한동안 약간의 우울증 탓에 축 처져 지내오다가 작은 돌파구를 찾았다. 요리학원에 다니기로 한 것이다. 

 

 

 

 

'XX 스시 아카데미'에 4월 21일 오전부터 나가 일식,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스시(壽司,초밥)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생선초밥도 만들겠지만, 웬만한 횟집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일본음식을 모두 배울 참이다.

 

 

 

 

 

 

 

 

요리를 배우기로 한 것은 마누라에게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에서 비롯됐다. 베이비부머인 우리 동기들끼리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농담인 '삼식이'취급을 당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 지름길은 바로 '부엌의 장악'이며, 이는 요리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주변의 몇 사람들에겐 4월 21일이 내가 '초보 일식 셰프'의 길로 접어드는 날이라고  알려줬다.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아직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히라가나,기타가나도 오랜만에 한번 읽어본다. 히라가나는 대충 알겠는데, 가타카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약간 예습했으니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Posted by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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