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필요한 자금 함부로 추산해 내놓지 말라
집·자녀교육 올인해 여윳돈 적고, 그나마 날릴까 투자 머뭇 … 은퇴 후 30년 어쩌나
기사전송 2010-12-01 00:08 최종수정 2010-12-01 01:59
[중앙일보 권혁주] 한국 32%, 프랑스 21%, 독일 9%, 네덜란드 9%. 높아서 좋은 수치가 아니다. 직장인 중 ‘노후 준비가 전혀 없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한국과 유럽 각국을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드러난 현실이다. 한국은 근로자들의 은퇴 후 소득 감소율도 가장 높은 것으로 별도의 조사에서 나타났다. 한국은 은퇴 후 소득이 은퇴 직전의 42%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58%, 영국은 50%, 일본은 47%였다. 준비가 없으니 퇴직 후 소득이 급감하는 것도 당연하다. 대체 한국 근로자들은 왜 은퇴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은 사교육비는 말할 것도 없고 공교육비의 민간 부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 가격도 소득 수준에 비해 몹시 높다. 이 때문에 가계자금이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가계자산의 약 80%가 부동산이다. 반면 미국은 이 비중이 35%, 일본은 41%로 한국의 절반 안팎이었다. |
피델리티자산운용이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에 의뢰해 도시 근로자의 은퇴자금 준비를 분석, 30일 발표한 결과다. 서울대는 통계청의 가계 수입·소비 실태와 노동부의 임금 조사,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의 펀드 투자자 조사 등을 토대로 현재 근로자들의 은퇴 후 예상소득 수준을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들은 2010년 화폐가치로 따져 3억3000만원을 은퇴자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개인 저축 1억6000만원,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 1억3000만원, 퇴직연금 1000만원 등이다. 보유 부동산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 최현자(소비자학) 교수는 “대도시인들이 생각하는 은퇴 후 필요 자금 규모는 5억1000만원”이라고 밝혔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2007년 서울과 6대 광역시 성인 3500명에게 은퇴 후 생활을 위해 얼마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어본 결과다.
피델리티자산운용과 서울대는 이날 ‘은퇴소득대체율’이란 지표를 발표했다. 은퇴 후 예상되는 평균 연간소득이 은퇴 직전 연소득의 몇 %에 해당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국내 도시근로자의 경우 은퇴소득대체율이 42%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은퇴 후 소득이 은퇴 전보다 58% 감소한다는 얘기다. 미국(58%), 홍콩(54%), 일본(47%) 등은 한국보다 은퇴소득대체율이 높았다.
은퇴소득대체율은 3년 전 조사(41%) 때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속내는 달랐다. 대체율이 증가한 주된 이유는 국민연금 수령 예상액이 늘어서다. 퇴직 후 소득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분석 때 32%에서 이번에는 41.1%로 높아졌다. 반면 개인연금이나 저축 등 개인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4.4%에서 55.7%로, 퇴직연금과 퇴직금의 비중은 3.6%에서 3.2%로 감소했다.
최현자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저축률이 낮아지고 금리도 떨어진 반면, (물가 상승 등으로) 가계지출은 늘어나는 바람에 개인저축 등의 퇴직 준비 기여도가 뚝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의 은퇴소득대체율이 35%로 가장 낮았다. 50대들의 코앞에 닥친 퇴직이 실제 이뤄지면, 수입이 갑자기 65% 감소한다는 의미다. 직장에 있을 때와 나왔을 때의 온도 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1955~63년생을 일컫는 ‘베이비붐 세대’의 상당수가 바로 이 연령대에 포함된다. 5년 전 시작된 퇴직연금제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점이 은퇴 후 수입이 급감하는 원인이다.
이들이 퇴직하기 시작하면 부족한 수입을 메우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할 가능성이 크다. 고정자산의 유동화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바닥인 집값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직장을 찾기 어려운 연령대이므로 소자본으로 자기 사업을 하려는 사람도 늘 전망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 정찬교 부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상당수는 직장 퇴직 후에도 소득을 올리기 위해 자영업 전선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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