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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5 리영희,내 진로에 가장 큰 영향 미쳐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분의 별세 소식에 부끄러운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고인은 내 진로와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다. 하지만 난 그 분의 고귀한 삶과 딴판으로 살았다. 자괴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81세를 일기로 5일 별세한 '실천하는 지성' 리영희 선생의 존재를 처음 안 건 1977년 봄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의 추천으로 산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며 선생을 흠모하기 시작했다. 

내가 1983년 가을,국가 기간 통신사인 연합통신(연합뉴스의 전신)에 기자로 입사하게 된 것도 대부분 리영희 선생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고인이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를 거쳐 조선일보 외신부에서 근무하신 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계신다는 사실에 푹 빠져 들었다. 

이 때문에 오늘 고인에 대한 흠모의 정을 되살릴 수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는 고인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죄책감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고인이 쓴 책 가운데 대부분은 어느 해인가 이사 갈 때 모조리 버렸다. 그 분의 논리와 주장이 '시대 전환'으로 빛을 잃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극복 당한 분의 저서라는  생각에서였다. 집에 남아 있는 것은 '10億인의 나라'(두레,1983년 5월 刊)라는 책 한 권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분과 관련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10억인의 나라'를 읽고 중국을 집중적으로 파보겠다며 대학 연구소에서 얻은 '중공연구도서목록'이라는 책이다.


  




1980년대 초반이니 중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던 시절이다. 때문에 모 대학에서 발행한 책 제목 속엔 '중국'이 아니라 '중공'이 들어가 있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고인은 나의 '사상'이 아니라 '향학열'이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어를 배우게 했고, 이후 25년 동안 중국어 초보 수준을 줄기차게 유지하게 만들었다. 

우리 마누하님에게도 중국어를 배우게 했다. 뿐만 아니다. 급기야 큰 아들에게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공하게 강권토록 했다. 지금 큰 아들은 북경사범대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있다. 

내가 고인의 별세에 즈음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사상' 영역과 그 실천 부분 때문이다. 하지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고인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며칠만이라도 숙연한 자세로 보내야 겠다. 이게 고인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예의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Posted by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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