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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입니다. // 이메일 edwdkim@naver.com// 조인스블로그 joinsmsn.com/edwdkim// 오마이포털 ohmyportal.net//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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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에 해당되는 글 73건

  1. 2010.12.13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2)월요병으로부터의 해방과 '회사가기싫어송'
  2. 2010.12.11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1)회사 후배들이 준 석별의 정
  3. 2010.12.1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40)큰 처형의 격려 메모와 뜻깊은 선물
  4. 2010.12.09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9)가정(家政) 데프콘3 발령!
  5. 2010.12.07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8)난 블로그 고수가 되려고 태어났다? 캠코더,웹캠,태블릿 등 장비보수의 날!
  6. 2010.12.07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7)조블의 파워 기자블로그 '파우스트' 티스토리에 차차 정착
  7. 2010.12.0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6)'1인 방송'진출의 꿈을 다지다[동영상] 2
  8. 2010.12.0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5)다음뷰 랭킹 20일 만에 2000위의 벽을 깼다
  9. 2010.12.0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4)잃어버린 버버리 목도리 찾았다_집에서 쫒겨나지 않았다
  10. 2010.12.0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3)백수(白手)를 쌍수(雙手)로 환영해주다
  11. 2010.12.0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2)고등학교는 좋은 데 나오고 볼 일?
  12. 2010.11.3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1)새로운 시작...큰 자유를 얻다
  13. 2010.11.3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30) 제자의 조선일보 합격을 축하하며
  14. 2010.11.3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9) 회사 일을 완전 정리했다
  15. 2010.11.28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8)내가 만약 헤드헌터 회사에 등록한다면?
  16. 2010.11.28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7) 아이패드,아이폰 4.2버전으로 바꾸기
  17. 2010.11.27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6) 내 분신(分身)의 불사르기(火葬)_회사 신분증의 종말
  18. 2010.11.26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5) 얼굴로 장난치지 마라?
  19. 2010.11.25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4)아빠 은퇴에 긴장하는 두 아들 "걱정 말아라"
  20. 2010.11.2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3) 건강수명 68세를 위해선...
  21. 2010.11.2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2)덕담 쏟아진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 모임
  22. 2010.11.23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1)남자도 가계부 못쓸 이유 없다
  23. 2010.11.22 [베이비부머 퇴직일기](20) 고주망태 될 일이 없다
  24. 2010.11.21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9) 안경 값을 40%로 낮춰 맞추다
  25. 2010.11.2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8)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요
  26. 2010.11.20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7) 1차 계획을 구조조정하다
  27. 2010.11.19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6) 언제 돈을 다시 벌 수 있을까 2
  28. 2010.11.18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5)이탈리아 여행을 자유롭게!
  29. 2010.11.17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4)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짜다
  30. 2010.11.14 [베이비부머 퇴직일기](13)QR코드 제작,아이폰 활용하기

퇴직 후 가장 산뜻한 변화는 월요병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뒷골이 쑤시고 긴장하는 스트레스가 확 날아 갔다. 잘 다니던 회사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자기 비즈를 시작한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면,뭐 이런 홀가분한 느낌도 '잠시 한 때'라고 한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대학 친구들은 길게는 20년,짧게는 15년도 더 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월급쟁이 생활을 해선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비즈니스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겠다는 야망을 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이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며 사업과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게 그걸 방증한다. 대학 동기인 이 친구들과 난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와 영 딴판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보니 그야말로 천양지차라고 할 만하다. 

난 완전 사회초보다. 특히 비즈에선 말할 나위 없다. 비즈에 대해선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과연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신문사 밥을 먹으면서도 틈틈이 '~MBA코스'니 '명품경영학'이니 회계원리 하는 책들을 봤지만 그건 이론일 따름이다. 

그러니 내가 뒤늦게 상품 거래가 걸린 비즈니스를 하는 건 극히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지식산업 종사자였으니, 이를 활용해 제한적인 비즈니스를 펼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퇴직 전 준비도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매우 큰 스트레스라고 하는데,난 아직 잘 모르겠다. 역시 왕초보라서 그런가 보다. 만약 일종의 긴장감에 해당하는 스트레스가 있다면, 그건 아무래도 이로운 스트레스(EUSTRESS)임에 틀림없다. 해로운 스트레스(DISTRESS)는 전혀 아니다. 꿈이 있고, 다소의 실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레 겁먹거나 비탄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다. 퇴직 첫 달이자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더 활기차게 보내야 겠다. 그리고 내년 1월 퇴직 기념 이탈리아 여행 땐 직장생활하느라 무척 지친 내 영혼과 육체를 달래 줘야 겠다. 종종 듣고 기분전환을 했던 '회사 가기 싫어 송'을 이제 폐기해야 할 때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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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후배들에게서 '감사패'를 받았다. 석별의 정이 담긴 뜻밖의 선물이다. 

아꼈던 몇몇 후배가 패를 만들고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어 줬다.고주망태가 되는 일을 여러 번 겪지 않고 싶어 가급적 한 번으로 끝내길 원했다. 하지만 연말이라 모두들 바빠 저녁 약속을 몰아서 잡기가 힘든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세 차례에 걸쳐 송별회를 받을 수밖에 없다.

10일 모임에 나온 후배들을 보니 재직 때 나름대로 정을 듬뿍 줬던 기자들이다. 주거니 받거니 술을 꽤 많이 마셨다. 필름이 끊기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선약이 있던 선배가 전화를 걸어 자리를 합치자고 했으나 사양했다. 





감사패 문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후배가 썼다고 한다. 종편에 대비한 보도부문 책임자로 요즘 엄청 바쁜 후배다. 그가 입사한 1988년부터 함께 일하며 연(緣)을 맺었다. 능력있고 의리 있고 정이 많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를 비롯한 좋은 후배들이 가기 뜻하는 바를 이루길 간절히 빈다. 고맙다. 

삼행시 
김 : 김영섭 선배가 가시는 그 길이  
영 : 영원히 '꽃길'이 되소서!
섭 : 섭섭한 후배들 마음을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선배를 가슴 깊이 존경하는 이상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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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9일 째를 맞은 오늘, 큰 처형에게서 선물과 함께 격려 메모를  받았다. 그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삶은 매순간 선택의 연속 아니겠소?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택을 한 김국장은 분명 그 꿈을 이루는 멋진 남편,아빠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큰 처형."

외로움을 탈 때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관심은 큰 힘이 된다. 꿈이 몇 단계나 되고, 그 꿈을 향해 매일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으니 퇴직 후의 허탈감 같은 건 나의 사전에 없다. 하지만 오랫 동안 성(城)안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으니 가슴이 꽉 찬 상태는 아니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순간 순간 스쳐간다.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지만 존재하는 걸 애써 부정할 필요까진 없다. 





큰 처형이 얼마 전 내게 "퇴직 기념 선물로 뭘 사줄까"라고 물었다. 큰 누님처럼 여기고 우리 식구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터라 선뜻 "워터맨 만년필의 카트리지(리필 잉크) 를 몇 개 사 달라"고 청했다. 워터맨 만년필 세트는 '우리집 연예인' 둘째 아들이 철야 카페에서 피를 말려가며 알바한 돈으로 사준 생일선물이다. 대학생으로선 거금에 해당하는 돈을 들여 내가 갖고 싶어했던 워터맨 세트를 선사했던 것이다. 





저녁식사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큰 처형이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나타났다. 커다란 비닐봉지엔 정열적인 색깔의 메모장과 워터맨 만년필 카트리지 3통,그리고 고급스런 노트 5권,연습장 5권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도 책을 읽고, 메모하고, 끄쩍거릴 것이 많으니 참으로 값진 선물이다. 정곡을 찌른 격려의 선물이다. 고맙다. 힘이 부쩍 솟아오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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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政) 데프콘3'가 발령됐다.  

행정안전부 장관인 마누하님이 학교 일로 출타 중이다. 제주도에 있다. 둘째 아들에겐 비상식량(식사용 용돈)이 주어졌다. 나는 대충 알아서 비상사태를 뚫고 가야 한다. 






수퍼마켓에서 햄을 사왔다. 냉장고엔 베이컨이 있다. 아침에 먹을 생식은 준비돼 있다. 데프콘3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데프콘1 상황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영국 버밍엄(1996~1997)과 광주(1998~1999)에서 혼자 지낼 땐 그야말로 데프콘1 상황 또는 전시라 할 만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그럭저럭 지냈다. 버밍엄에선 어렵사리 구한 홍어로 찜을 만들려다 대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불에 얹어 놓은 채 다른 일을 하다 홍어가 타는 바람에 윗층에 사는 외국인 부부가 불이 난 줄 알고 대피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그에 비하면 마누하님이 잠깐 집을 비웠으니 약과다. 그렇더라도 비상은 비상이다.   





 [내 저녁식사의 비상 상황과 관련한 '긴급사태 대책'(contingency plan)]

          'my 데프콘' 수준          상        황          비고 /대책
           my 데프콘5  저녁 식사에 아무 애로가 없을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약속이 있거나,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  
 꿈같은 평화
           my 데프콘4 저녁 식사에 약간 애로가 있을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 약속이 없고,마누하님이 저녁 약속이 있으나 저녁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갈 수 있는 경우)
 귀가해 밥이나 국을 덮혀 먹고, 설거지를 개끗히 해야 된다
            my 데프콘3  저녁 식사에 꽤 애로가 있는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 약속이 없고,마누하님이 저녁 약속이 있고 저녁을 준비하지 못해 라면을 끓여 먹거나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하는 경우,이에 준하는 경우)
 귀가해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아니면 나홀로 외롭게 밖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my 데프콘2  저녁식사에 큰 애로가 있는 경우
(마누하님의 몸이 불편해 내가 모두 다 해야 하는 경우)
 이런 일은 생기지 않길 항상 기도한다. 마누하님에게 전복죽을 사다 주고, 나도 뭔가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필요한 경우 설거지도 해야 한다. 아들 저녁도 챙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my 데프콘1  저녁식사고 뭐고 정신없어 먹을 엄두도 못내는 경우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경우) 
 하느님 맙소사. 제발 이런 일은...











영국에서나 광주에서나 만만한 식사가 베이컨,햄, 달걀 후라이,우유,빵이었다. 
손쉽게 만들 수 있으니 이런 것들로 종종 식사문제를 해결했다. 빵 대신 컵라면 하나도 훌륭한 요기가 된다. 김치를 비롯한 기본 반찬이 구비돼 있으니 쌀밥을 지어 먹어도 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역마살이 다소 낀 모양이다. 독수공방을 꽤 오랫동안 했다. 모든 걸 자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햄과 베이컨을 토마토케찹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가정 데프콘 3 상황은 목요일 저녁이면 끝난다. 별 탈 없이 마무리지어야 한다. 특히 마누하님이 돌아오기 전에 설겆이를 깨끗히 해야 한다. 재직 중 상황과 퇴직 후 상황에서 강구하는 이같은 자구책은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세월이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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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제2의 인생을 위해 최근 1년 사이 사들인 장비들을 확인하고 보수하기로 한 날이다.오전에 일치감치 마포 사무실의 다른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재택근무하겠노라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흔들거리는 치아를 바로잡기 위해 치과에 다녀왔다. 이 때부터 몇 시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베란다 사물함을 뒤져 흘러간 물건들을 모두 정리했다.


이들 물건 가운데 장비 보수의 핵심 대상은 삼성 HD캠코더(HMX-H200), 이동식 라이브 웹 카메라(웹캠,actto社제품), 펜 태블릿(뱀부 MTE-450,와콤社 제품)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좀 낡은 디지털카메라 1대와 이름도 쓰임새도 기억하기 힘든 각종 케이블이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 나온다. 

머리가 상당히 어지럽다.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텅빈 아파트 거실에는 사물함에서 빼낸 장비들로 가득하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각 장비의 설명서를 찾아내 읽으면서 세트끼리 구분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이들 장비는 모두 블로그를 하기 위해 장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난 '대한민국의 블로그 고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지도 모르겠다. 2004년 3월 조인스닷컴 대표 등 간부진의 부탁을 받고 블로그를 앞장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후배기자들에게 솔선하는 의미에서였다. 

조인스 블로그를 하다보니 스캐너와 디지털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느날 퍼뜩 들었다. 마누하님에게 말했다. 그녀는 얼마후 이 두 가지 장비(휴렛패커드社의 스캐너,니콘社의 디지털카메라)를 사줬다. 이후 우리 마누하님의 적극적인 후원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오늘 보수한 장비 외에 어느 시점에서 이른바 첨단제품이라고 불리는 제품의 거의 대부분엔 마누하님의 애틋한 관심과 애정이 깃들여 있다. 

그 덕분에 2005년 한양대 언론대학원 석사논문을 '블로그'로 썼다. 최근 1년 사이에 사들인 제품의 상당수도 블로깅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제2의 인생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철철 넘치는 자신감은 기본적으로 블로깅을 무척 즐기는 데서 비롯됐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염두에 두는 공자님의 지호락(知好樂) 가운데 마지막의 '락(樂)'에 해당하는 게 블로깅이 아닐까.

마침내, 아는 것(知)과 좋아하는 것(好)을 훌쩍 뛰어넘는 '락(樂)'의 대상 가운데 확실한 것 하나가 바로 블로깅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매스컴에 종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니컴이랄까 1인 미디어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즐기는 짓을 하다 죽는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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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블로그의 기자 블로그 '파우스트'가 포털 다음의 티스토리에 조금씩 뿌리를 내려간다. 이 바닥에선 완전 무명이니,다시 새로 땅을 골라 초석을 다져가야 마땅하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니 만큼, 단단한 각오로 새출발을 할 생각이다. 


최근 몇 달 째,조인스닷컴 블로그를 등한시했더니 많이 피폐해 졌다. 몇 년 동안 조블에선 고정 독자나 블로그친구나 꽤 있었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 준비를 오랜 기간에 걸쳐 해오는 바람에 소원해진 분들이 적지 않다. 소통을 게을리했으니 , 인기도를 나타내는 별표도 몇 년 전 5개를 단 이후 처음으로 4개로 줄었다.  






  



월요일엔 조인스 블로그를 어떻게 할까 깊이 고민했다. 티스토리에 쏟는 시간과 열정이 사뭇 강하다. 이 때문에 정이 깊지만 조블을 제대로 끌고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004년 3월부터 꾸려온 터라,하도 정이 많이 들고 너무 아깝다. 내 지난날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귀한 존재이고, 파우스트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버리기엔 너무 많이 컸다.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활용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우선, 컨텐츠를 담는 그릇으로 쓰기 위해 폴더를 5개 신설했다. 일종의 DB 개념이다. 그리고 조인스 블로그에 박아 놓았던 위젯 하나를 치우고, 그 대신 티스토리의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블로그 포털(내가 만든 용어다!)과 연결되는 위젯을 심었다. 티스토리 바닥에선 아직 무명 중의 무명이다. 때문에 조인스 블로그도 쓸모가 있는 날이 조만간 반드시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나저나 초창기에 온오프 라인에서 친하게 지낸 조인스 블로그의 다이아몬드 같은 친구들이 많이 떠났다. 굳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따금 쓸쓸함을 느낀다. 외롭다. 티스토리에서 기초공사를 더 단단히 한 다음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봐야 겠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글 = 김영섭 ( edwdkim@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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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방송국 아프리카(http://afreeca.com)를 처음 시도한 것은 2010년 4월 17일이었다. 1인 방송국 도전을 위해 이동식 웹캠을 하나 구입했다. 그런데 초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름신의 강령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고정식 웹캠이 달린 노트북PC에 돈을 질렀다.  

그리하야 드디어  아프리카(A Fee Casting,즉 자유/무료 방송이라는 뜻) 생방송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말투도 어눌하고,사투리 억양도 섞였다. 특히 방송용 멘트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와는 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시엔 웹캠 자체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기기를 다루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욱이 난 50대 중반의 장년이 아닌가. 


         [단순 이미지 입니다]





[동영상 입니다]




블로그 포털의 기초공사가 착착 진행되면 1인 방송국에의 꿈을 다시 활짝 펼칠 계획이다. 방송용으로 샀던 옷을 입고 생방송에 나설 것이다. 이 옷은 거의 딴따라 수준이다. 그리고 생방송을 녹화한 영상(위 동영상과 같은 형식)을 이 사이트에 올릴 계획이다.

다중을 상대로 생방송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방송 매너를 갖춰야 하고, 방송 스타일에 익숙해 져야 한다. 또 뉴스 캐스팅이나 오락 프로그램 등 여러 방송 장르 가운데 어떤 것에 가깝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탄탄한 컨텐츠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1인 방송국 아프리카를 매일 일정 시간대에 운영하려면 생방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나름대로 구축해야 한다. 아직은 그럴 여유와 여력이 없다. 블로그 포털 구축이 0순위다. 이게 내 퇴직 프로젝트의 가장 기본이다. 

아이폰으로는 짧은 방송을 당장 할 수 있다. 트위터의 제3자서비스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된다. 1인 방송국 아프리카의 생방송이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이라면,트위터 방송은 카메라 출동에 해당한다. 내 역할이 전자가 앵커라면 후자는 보도국 기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생방송과 트위터 방송. 
이걸 갖춰야 내가 꿈꾸는 '미디어 그룹 회장'이 된다. 차원은 다르다. 하지만 미디어 포트폴리오로 개인도 미디어그룹 회장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놀라운 신세계다.  
 
글,동영상=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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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부터 소소한 일상을 적은 '베이비부머 퇴직일기'를 30회에 걸쳐 연재했다. 검색을 해봐도 이런 류의 글이 거의 없다. 아마도 창피하거나, 경황이 없거나, 글을 쓰기 싫어하는 등의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블로그포털(http://icharm7.com)은 꾸준한 포스팅으로 다음뷰 랭킹 2,000위(하루 순위)를 처음으로 깼다. 11월 15일 8,207위였던 순위가 20일 만에 1,939위로 6268위나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무엇보다도 성실해야 한다. 매일 끊임없이 포스팅을 해야 한다. 무언가 쓸 만한 것을 잡아내 글과 사진을 올려야 한다. 시사에 대한 의견 제시도 좋고,취미활동도 좋고,개인의 창작에 해당하는 포스트도 좋다. 각 폴더에 기본적인 컨턴츠를 채워 넣어야 한다.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한 기초공사에 해당한다. 

두 번 째로는 다른 블로거들과의 친목 다지기에 들어가야 한다. 정보도 공유하고,서로 격려도 해줘야 한다.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소통을 해야 한다. 아직 이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기초공사를 한참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순위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20일 만에 2000위라는 1차 벽을 깨부쉈다. 기분이 좋다. 12월에도 성실하게 묵묵히 블로깅 하다보면 한 단계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베이비부머의 퇴직 준비 35일 째, 퇴직 5일 째다. 
글=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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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잃어버렸던 버버리 목도리를 찾았다. 그 날 술자리는 조선일보에 합격한 고려대 언론학부 신문방송학과 제자를 비롯한 세 명의 후학들과 함께했다. 3차까지 갔는데 어디에 목도리를 흘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을 남대문 시장의 닭곰탕집에 잡았다. 이 닭곰탕집은 1962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식당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옛)삼성본관 앞 카페 '음악과 사람들'에 확인해 보니 목도리가 없다고 했다. 북창동 호프집 '술먹는 하마'로 갔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난감하다. 그렇다면 1차인 청기와 생고기집에서 흘렸단 말인가. 거기선 정신이 말똥말똥했는데...




한참 걸어서 청기와 생고기집에 도착했으나,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이 곳은 생고기로 끓인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하지만 난 코다리찜을 훨씬 더 사랑한다. 코다리에 서울막걸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 가운데 하나다. 불꺼진 창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걸어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것만도 큰 수확이다. 

다음날, 점심 때가 지날 무렵,청기와 생고기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잘 싸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주인의 정겨운 목소리가 목도리의 안전을 알렸다. 다음날 마포 사무실의 대학동기들을 꼬드겨 서소문의 생고기집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만에 버버리 목도리를 찾았다. 다행이다.마누하님에게 쫒겨나지 않겠구나! 

이 목도리는 우리 집 마누하님의 정성이 깃든 선물이다. 2년 전인가 버버리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그 땐 4차 술집 어디에서도 목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못내 아쉬워했고, 마누하님에게도 매우 미안했다. 그런데 마누하님이 여러 날에 걸쳐 백화점 등을 뒤진 끝에 컬러와 디자인이 똑같은 목도리를 사왔다. 그 갸륵한 정성 때문에 목도리는 다시 잃어버리면 안되는 소지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사 갈 때 버려지지 않으려면(ㅋㅋ) 이런 건 좀 잘 간직해야 한다. 제2의인생에선 마누하님의 힘이 무척 강하다. 글=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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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환영회가 열렸다. 

대학 동기 4명이 제2의인생 첫 발을 디딘 나를 위로하기 위해 환영회 겸 송년회라는 명목으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해 줬다. 홍대 앞 '미주가리 횟집'에서 백고둥 찜, 쥐치 회,문어 회,도루묵 찌개 등을 안주 삼아 양주와 소폭을 때렸다. 

강원도 출신인 친구 문찬이는 옛날엔 버렸던 쥐치나 도루묵을 요리하니 맛있다고 한 마디 한다. 양주는 문찬이가 중국 출장갔다 올 때 사온 위스키 글렌피딕(Glenfiddich) 18년산이었다. 양주는 값과 맛,품질을 따져 볼 때 역시 18년산이 최고다.  







근처 노래방에 들어갔으나 룸이 너무 좁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야, 우리 나이에 아이들처럼 그렇게 좁은 곳에서 노래 부를 일 있냐?"  한 친구의 강력한 제의로 노래를 부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가 다섯 명이나 되니 우리끼린 좀 그렇다. 도우미 두 사람을 불러 분위기를 약간 부드럽게 했다. 이 정도면 그런대로 품위를 지키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온라인과 모바일의 세계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내게 동기들의 따뜻한 격려는 앞으로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벌써 한 친구가 코칭에 나선다. 글의 종류와 트위터 활용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는 저간의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관심을 쏟아주는 친구가 고맙다. 일리 있는 말은 조만간 따로 만나 자세히 듣고 항로 수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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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달 전부터 나가고 있는 마포 사무실은 매우 독특하다. 대학 동기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일을 한다. 1977년에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에 입학한 동기들이다. 이 가운데 3명은 수출입 업무와 내수 시장 판매를 겸하는 종합상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인 나는 종합 일간지 신문기자 출신의 화려한 백수다. 


집에 '무농약 토마토' 한 상자와 과일을 통째로 갈아 만든 토마토,키위,감귤,딸기 주스(용량 460ml)가 각 한 병씩 배달됐다. 동기들에게서 몇 번 이야기 들었던 사람에게서 온 택배물이다. 도착하자마자 주스 세 병이 불티나게 팔리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토마토 자체도 신선하고 맛있다. 주스는 맛과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것 같다. 화려한 백수가 이런 선물도 받다니 영광이다.(이럴 때 내가 자주 쓰는 농담. "영광은 내 친구 고향이여~")





값진 건강식품을 보낸 이는 경제학과 출신인 주성돈 사장의 우신고 동창이라고 한다. 그는 고교 동창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이 제조 및 판매하는 제품을 선물로 보낸 것이다. 동기들끼리 농담을 했다. "고등학교는 좋은 데 나오고 볼 일이야. 우신고 같은 명문을 나와야 이런 것도 얻어먹지. ㅋㅋㅋ"   





내가 감동을 먹은 건 택배물에 동봉한 편지 한 통이었다. 편지지 겉봉투에 '김영섭 님께'라고 쓴 이 편지지의 발송자는 토마토영농조합법인 최승국씨. 이 사람이 우신고 1회 졸업생으로,연대 경제학과 출신의 주성돈 사장의 고교 동기다. 난 아직 만나본 적 없으나, 같은 사무실의 동기들은 모두 꽤 친한 모양이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토마토영농법인 웰그린 사이트(http://wellgreen.com)에 들어가 봤다. 최승국이라는 사람이 토마토 영농법인의 대표다. 경영학과 동기인 이인근 사장이 "영섭아, 승국이하고 소주 한 잔 해봐. 참 괜찮은 친구야. 언제 한 번 일산 가서 함께 한 잔 하자"라고 말한다. 

화려한 백수는 혼자 중얼거린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사람들을 떳떳하게 만날텐데..." 그리고 또 옹알거린다. "고등학교는 좋은 데 나오고 볼 일이여" 
글=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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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일은 새 삶이 열리는 날이다.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조기 퇴직의 길을 밟았지만 꿈과 희망을 다시 다지는 날이다. 꿈을 잃지 않고 회사 문턱을 나섰으니 천만 다행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자유롭게 글을 쓰는 일이다. 조직에 얽매인 사람은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를 지켜야 마땅하다. 난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야 한다"는 시쳇말을 진리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제, 자유다. 맨 먼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싶다. 오블(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이따금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다. 물론 내 희망의 등불인 티스토리 블로그는 차근히,단단하게 키워야 한다. 필수과목이다. 티스토리 블로깅을 통해 '스스로 고용하는 모습'을 만들고 싶다. 그래야 2단계 프로젝트로 넘어갈 수 있다. 

오늘 저녁엔 조선일보에 합격한 고려대 제자 등과 함께 코다리찜에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킬 계획이다. 술에 꼭지가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겠다. 따르는 제자도 있고, 믿음직한 회사 후배도 있고,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자유인이 됐으니, 앞으로 부끄럽지 않게 삶을 꾸리는 일만 남았다. 부디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제2의인생길의 첫 날을 불과 6시간 앞둔 지금, 신천지에 대한 설렘이 상당하다. 이제,고려대 제자들을 만나러 출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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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 조선일보 합격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지난해 고려대학교 언론학부에 봉직할 때 지도했던 학생이 조선일보에 합격했다고 알려왔다. 12월 1일부터 그는 '조선일보 곽래건 기자'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또 '세계일보 김태식 기자'의 탄생 소식도 전했다. 

두 사람 모두 고려대학교 '언론고시반'출신이다. 방학 때 내가 시간을 쪼개 집중 지도한 학생들이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신문기자,방송기자,아나운서PD들이 무더기로 탄생하길 기원한다. 






난 2009년 한햇 동안 '언론사 20명 합격'을 목표로 삼고 학생 지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틈만 나면 "방학 동안에 코피를 쏟아라"며 분발을 촉구하곤 했다. 내가 신문기자이지만, 방송 관련 서적을 여려 권 사서 읽으며 공부하고 방송사 사이트에 들어가 연구해 방송보도 실습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참 좋았다. "교수님! 방송보도 실습 한 번 더 해요!!!" 학생들의 요구사항에 순순히 따랐다. 현장 취재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휴일 오전에 강남역 6번 출구, 삼성본관 등에 학생들을 소집했다. 근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취재 및 기사 작성 요령을 설명했다. 그리고 '취재 주제'를 여러 개 적은 쪽지를 준비해 가서 나눠줬다. 마감시간은 오후5시 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언론사 실무테스트를 실제로 해본 것이었다. 떨지 말고 응하라는 취지에서였다.   







실로 오랜 만에 내가 '수업 카페'로 썼던 다음 카페를 방문했다. 내가 여전히 카페지기인 이 카페 (http://cafe.daum.net/kumet)엔 한 수강생이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 만에 들어와서 자료를 보고 갑니다. 확인하실지 모르겠네요."라는 덧글을 남겼다. 조선일보 곽래건 기자의 탄생 뉴스를 댓글로 달았다. 

난 2010년 11월 30일자로 신문사를 떠난다. 곽 기자는 2010년 12월 1일부터 신문사에서 일한다. 세계일보 김태식 기자에게도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곽래건 기자의 언론계 진입과 김영섭 기자의 언론계 퇴진은 명백한 세대교체의 사례다. 

글=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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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을 완전히 정리했다. 드디어 2010년 11월 30일,30년에 가까운 신문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확히 27년 1개월 만이다. 나이도 한 달 후면 55세가 되고,아무런 속박도 없는 자유인이 됐으니 명실상부한 자기성찰이 가능해 졌다.  








군 제대를 앞두고 관물을 반납하던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어떤 측면에서는 제대나 퇴직이나 속박을 훌훌 털고 나아가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다. 그 때는 스물다섯 살 패기가 넘치는 청년이었다. 이젠 쉰 다섯 원숙함의 향기를 뿜어내야 할 장년이다. 몇 년 동안 쓰던 노트북 PC를 회사에 되돌려줬다. 페북 친구인 정보지원팀장과 흡연동지 몇 사람이 달려와 건강과 행운을 빌어줬다.  


총무팀엔 신분증을,재무팀엔 법인카드를 각각 반납했다. 보직을 1998년부터 줄곧 맡아 법인카드를 무려 13년이나 썼다. 직책이 썩 빛나지 않았더라도 이런 건 신문사에서 흔하지 않은 기록에 속한다. 몇 년 전 관훈클럽 세미나 때 만난 한 선배는 내게 '보직 전문기자'라고 놀려댔다. 그만큼 회사에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2010년 말로 딱 2년 남은 회사 생활을 채웠더라도 아마 법인카드는 계속 썼을 것 같다.  




오늘은 좀 어지럽다. 어제 회사 동료들과 1,2차를 하고 2년 전 퇴직한 회사 동기를 불러내 1차를 했다. 때문에 평형감각에 다소 문제가 있는 건 과음 때문일 것이다. 퇴직한다고 어지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또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머리가 팽 돌 이유가 있겠는가.

글=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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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경영.상경대학 동문회에서 내는 '연경포럼'(계간지)의 편집인 직무대행을 1년 동안 해오고 있다. 대학 홍보분과위원으로서, 위원장 겸 '연경포럼'편집인인 K선배의 직무를 돕는 역할이다. 취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 개입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계간지의 대장이 나오면 레이아웃과 제목,기사를 데스킹하는 것이다. 편집인 직대라는 게 직제 상 있는 건 아니지만, 실무적으로 그런 일을 맡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선배의 보좌역인 셈이다. 


얼마 전 연경포럼 홍보편집위원회 모임에서 내가 11월 말일자로 퇴직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일종의 신상 변동 보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상황을 매우 잘 알고, 그 때문에 내 현 위치와 미래를 판단할 수 있기에 떠나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해 줬다. 여러 상황으로 물러나야 할 때가 됐다고 난 최종 판단했다. 그리고 '전직 지원' 신청서를 냈다. 회사도 타당성을 인정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명예퇴직'이다. 정년이 2010년 말로 딱 2년 남았지만, 제2의 인생을 꾸리기 위해 회사와 '합의 이혼'한 셈이다.   







작은 기업의 CEO로 열심히 살고 있는 한 젊은 후배가 회식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 마디 던졌다. "선배님. 헤드헌터 회사에 등록해 두세요. 요즘 소셜 미디어 분야에 밝은 홍보임원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지론이 있다. "50대는 쓸모는 많으나 쓸 데가 없다." 
적절하게 예우해 줄 만한 연봉과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헤드헌터 회사에 등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큰 자유를 얻었으니 적당히 즐기고 싶다. 하지만 만일 등록한다면? 

▶ 나의 인적 자산은? 
① 연합뉴스(4년 7개월)와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만 27년 1개월 했다. 따라서 각 언론사에 네트워크가 꽤 있다.   

② 지방본부장,편집국 부장,편집국 부국장,논설위원 등을 두루 거쳤고  행정국장(인사+예산+총무 등 담당)을 꽤 오래 하면서 '경영임원회의'에 계속 참석하고 활동했다. 편집 외에 광고,판매,경영지원 등 숱한 분야를 두루 훑어볼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경영 감각이 신문기자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전공도 경영학이다.

③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블로그가 언론사 운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2005년)'를 썼다. 조인스닷컴 블로그를 6년 8개월 운영했다. 누적 방문자 수는 오늘 현재 395만 여 명. 행정국장 겸 웹2.0추진팀장으로 2년 간 일했다. 걷기와 자전거 열풍(워크홀릭 캠페인)을 불러 일으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웹 2.0 사이트 2개(walkholic.com 과 opentory.com)의 제작을 현장에서 진두 지휘했다. 웹사이트와 연계해 개인의 걷기 기록을 평생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만보기(일명 walkie)를 우리 팀에서 개발해 봤다. 따라서  온오프라인 연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의 수준이  꽤 높다. 

④ 2009년 한 햇 동안 고려대학교 언론학부에서 초빙교수로 봉직했다. 유민문화재단의 석좌기금으로 회사를 휴직한 채, 안암캠퍼스에서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진로 지도했다. 포털 다음에 수업 전용 카페를 개설해 운영하고, 수시로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해 봤다. 따라서 나이에 비해선 감각이 꽤 젊다. 


⑤ 2009년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고,온라인 학습 사이트에 가입해 웹디자이너 과정과 웹 프로그래머 과정을 끙끙대며 공부했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줄곧 놓지 않았다. 따라서 IT 전문가 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높고, 웬만한 것은 코드와 언어가 통한다. 

⑥ 다양한 분야,(크게 보아선)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 대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문화,예술 등 분야에 관한 책에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따라서 상상력과 사고력이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⑦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수 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트위터의 30여 개 애플리케이션(서드파티 포함)을 직접 돌려보는 등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을 100 개 이상 실험해 봤다. 트윗얌이 평가한 트위터(복수)의 가치는 1억 원이 훨씬 넘는다.한편 페이스북의 친구 는 현재 430명. 따라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마케팅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다. 

⑧ 인간의 도리,의리를 중시하는 편이다. 알고 보면 자존심이 강한 편이나, 조직 적응력도 뛰어난 편이다. 걷기.산책과 등산을 즐기는 편이다. 색소폰을 배웠고 앞으로 훌륭한 취미로 키울 생각이다. 무진장 노력하면서 술을 매우 많이 마실 줄 알게 됐으나, 술에는 장사가 없음을 절감했다. 올해 들어 술자리를 종전의 10분의 1로 줄였다. 그 덕분에 몸무게는 2~3kg 줄었다. 

⑨ 중국어를 시작한 지 24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여전히 초보다. 중국 술집이나 상점에선 통하는 구석이 있다. 조직 생활하면서 몇 년마다 틈틈이 공부하려고 애쓴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이다.  프랑스어,일본어 왕초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고교 시절의 제2 외국어는 독일어였다. 마누하님과 함께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에 대비해 '여행 이탈리어어'책 한 권을사서 흥얼거리고 있다.  이번 주말에 라틴어 입문 서적과 사전을 샀다. 꼭 하고 싶었던 외국어다. 기본과정은 마칠 계획이다.


▶ 뭘 원하나? 
연봉 2억원 이상의 홍보마케팅 임원(전무 급 이상). 새로운 웹사이트 구축과 영업을 원하는 회사의 CEO. 하지만 쓸모는 있지만 '쓸 데'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썩 기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곧장 제2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계획은 있지만, 도상훈련과 전장은 사뭇 다르다. 뚫어보자!!!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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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회사 동료의 아들(재미 유학생)에게 부탁해 사들인 아이패드의 버전 3.2.2(7B500)를 4.2로 바꿨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다. 맨 처음엔 한글 자판 앱을 하나 사서 메모장에 쓴 뒤 복사해 주소창 등에 붙여넣은 방식으로 활용했다. 아이튠스 앱스토어에 한국 시장이 열리지 않은 탓에,엉터리 미국 주소로 계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좀 지난 다음엔 스물 한 살 어린 젊은 후배의 꾐에 못이겨 아이패드의 탈옥(Breaking prison)을 감행했다. 내가 아끼는 이 후배는 가을에 회사의 해외출장자를 통해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바이러스나 해킹이 두려워 하지 않으려 했으나,젊은 후배가 괜찮다며 본인이 해주겠다고 적극 나서는 바람에 탈옥하고 말았다. 






2007년에 구입해 작동하느라 끙끙댔던 아이팟에 넣어두었던 뮤직은 탈옥한 아이패드에 그대로 살아 남았다. 아이팟에 들어 있는 뮤직 140곡 가운데 대부분은 내가 소리바다에서 돈을 내고 공식 구입한 것이다. 일부는 '우리집 연예인' 둘째 아들이 갖고 있던 곡이다. 아마도 P2P로 내려받은 곡일 것이다. 탈옥의 최대 축복은 한글 자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패드 탈옥의 달콤함을 행복하게 즐겼다. 

초가을까지만 해도 아이패드의 국내 보급량이 1,000대 선으로 추정됐던 만큼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이패드는 코빼기도 보기 힘들었다. 전철에서 아이패드를 하는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혹 아이패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다가와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는 중고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봤다. 50대 중반의 장년이 아이패드 얼리 어댑터로서의 행복감을 맘껏 누린 셈이다.







10월 중순,아이폰을 손에 넣었다. 이 때 아이폰에 뮤직과 각종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깔면서, 아이패드를 아이튠즈와 동기화했다. 이 과정 역시 젊은 후배가 해줬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이패드에 한글 자판이 사라졌다. 다시 문자(한글)가 없는 암흑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트윗이나 페북 놀이는 아이폰으로 해치울 수 있었다. 아이패드는 주로 각종 사이트를 보는 데 활용했다. 

드디어 아이패드 iOS 4.2를 깔 수 있다는 낭보가 날아 들었다. 네이버의 아이패드 동호회에 올라온 정보와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주말에 작업을 시작했다. 아이패드를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하고 (최신) 버전 업데이트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가 알아서 척척 하는 과정을 눈여겨 봤다. 그 과정은 ① 버전 3.2.2를 없애고  iOS 4.2 깔기 ② 아이패드에 들어 있는 컨텐츠(애플리케이션 포함)를 아이튠즈로 보내기 ③ 아이튠즈에 정리된 컨텐츠를 아이패드로 보내기(즉 동기화) ④ 백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탈옥한 탓인지 제대로 깔리지 않는다. 제대로 깔리지 않았다는 경고문이 떴다. 하는 수 없다. 복원하는 수밖에. '버전 업데이트' 버튼 밑에 있는 '복원' 버튼을 눌렀다. 팝업창에 ▶다운로드 및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 ▶ 다운로드 할 것인가 선택하는 버튼이 보인다. 이 때 첫 번 째 버튼을 누르면 아이패드에 이미 들어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다 날라간다. 다운로드= 버전 4.2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 아이튠즈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아이패드 업그레이드(최신화) 이기 때문이다. 버전만 4.2로 높이려면 반드시   '다운로드'만 하는 마지막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다운로드+업그레이드'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아이패드에 깔려 있던 애플리케이션이 기본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아이튠즈에 진열된 많은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마음에 드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일일이 아이패드에 다시 까는 작업을 몇 시간에 걸쳐 해야 했다. 오, 하나님! 



아이패드를 최신 버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뮤직 11곡이 소실됐다. 이게 아마 '우리집 연예인' 둘째 아들이 P2P로 받은 부실한 뮤직일 터이다. 몇 시간 뒤, 내 아이패드는 완전 정상이 됐다. 더욱이 '떳떳한 한글 자판'을 쓸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음은 아이팟 차례다.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4.2버전으로 바꾸는 건 너무 쉽다. 이제 완벽한 '애플 매니어'그룹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아이팟-아이패드-아이폰에 이어 한 달 전 MAC 미니PC에 지름신이 강령하시는 바람에 구입해서 잘 쓰고 있고, 버전도 모두 업그레이드 했으니. 베이비부머 퇴직일기 27일 째의 내용이 가장 난해하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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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분신(分身) 같은 존재나 징표가 있게 마련이다. 월급쟁이에겐 신분증이 중요한 분신의 하나다. 신분증이 회사 출입증의 역할을 하거나 출결을 체크하는 데 통상 쓰이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고 증명하는 신분증이야말로 개인의 분신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제 근무일로 따져 월,화 이틀이 지나면 정든 회사를 영영 떠난다. 나는 회사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애써 조직에 적응하려고 했다. 한편 회사는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를 예쁘게 감싸준 게 분명하다. 그 덕분에 그 오랜 세월을 '동거'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금요일 오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퇴직 처리 절차에 따라 신분증과 노트북PC를 반납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트북은, 한 달 간의 말년휴가(연월차 휴가) 내내  '출근'한 마포 사무실에 있다. 양복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에서 회사 신분증을 꺼내 봤다. 이 증이 발급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때가 꽤 묻어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고인의 몸을 정성껏 깨끗하게 씻어 드린다. 그런 다음 수의를 입힌다. 서양에선 고인의 얼굴 등 몸 치장까지 한다. 가톨릭 장례의식을 영화 같은데서 보면 고인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눈을 감은 채 관에 누워 있다. 조문객들은 사자(死者)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꽃을 가볍게 놓는다. 

고인의 몸을 청결하게 하는 건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의 경우에 한하지 않는다. 화장(火葬)할 때도 그렇게 한다. 그것은 떠나는,아니 돌아가는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땅 속에서 곧 영면에 들어가거나 불구덩이 속에서 몇 줌의 재가 될 터인데도 굳이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인간의 일이다.






      

신분증은 아마도 1990년대 초반부터 내 분신이었다. 그런 귀중한 신분증을 며칠 뒤 장례 지내야 한다. 내 분신은 반납되면 파쇄기로 부숴지고 이내 쓰레기통에 쳐박힐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에 타 육신을 잃을 게 분명하다. 죽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욕실로 신분증을 들고 가 깨끗히 씻어줬다. 오랫동안 풍파에 시달려 때가 덕지덕지 묻고 낡은 내 분신을 비누로 정성껏 씻어줬다. 어차피 며칠 후면 소각장의 불덩이 속에서 활활 탄다. 갓난 아이의 한 줌도 안되는 재가 돼 사라진다. 하지만 그냥 보내지는 못하겠다. 분신의 육신을 어루만져 준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마지막으로 건넨다. 
"슬퍼하지 말아라.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 모든 것은 흐른다 ( Panta rhei )."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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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어린 아이들처럼 장난을 쳐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으로 장난질을 해 본 것이다. 누구나 아는 말 한 마디가 순간 머릿속을 감돈다.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참 많이 늙었다. 이마에 주름이 세 가닥 계곡처럼 깊게 패였다. 양 미간에는 또 두 줄의 주름이 실개천처럼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마의 주름은 눈을 치뜨는 버릇 탓에 생긴 듯하다.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두 눈썹 사이에 패인 두 줄기는 내 책임이다. 이건 만들지 않을 수 있었는데..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찡그려서 낙인이 찍힌 것 같다.  

지난해 1년 동안 고려대학교 강단에 섰을 땐 이렇다할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잘 지냈다. 그래서 틈 나는 대로 양 미간의 골을 펴보려고 애썼다. 거울을 보며 손으로 문지르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중국의 '찡그린 모습조차 예쁜 미인' 서시도 아닌데 여간 보기 싫은 게 아니다.  

공식 퇴직일자가 어느덧 나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제 훌훌 털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겠다.  어제 오후 늦게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마무리 절차에 대한 안내를 부탁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착하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K씨가 오늘 중 이메일로 퇴직절차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찬바람이 쌩쌩 부는 성(城)밖으로 나올 날이 워킹데이로 따지면 금요일과 월,화요일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마누하님이 며칠 전 마지막 월급날에 내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지막 봉급 받으니 기분이 어때요?" 

"뭐 그다지 쓸쓸한 생각은 들지 않아. 앞으로 살아갈 날을 깊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니 그런가 봐. "  하지만 어찌 쓸쓸하지 않겠는가. 27년 여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은퇴하는 마당에 완전 덤덤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 아,내 젊음.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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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은퇴에 두 아들이 꽤 긴장하는 것 같다. 특히 큰 아들의 긴장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큰 아들은 올 가을부터 중국 북경사범대에서 1년 일정의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학교 기숙사에서 산다.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이 녀석은 중국으로 떠난 뒤, 아빠가 퇴직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엄마에게서 들었다. "아빠가 11월 말로 퇴직이다. 너 긴장하라고 말하는 거야." 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연말에 그만두시겠다고 몇 번 말씀하셔서 긴장하고 있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연예기획사에서 맹연습 중인 '우리집 연예인' 둘째 아들은 성격이 매우 쿨해서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보면 정이 깊은 녀석이다. 아빠가 쓸쓸해할까봐 귀가해서 일부러 방안에까지 들어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둘째는 지난해 초빙교수로 봉직한 고려대학교 언론학부의 마지막 강의 시간에 '깜짝 참석'하기도 했다. 아끼던 몇몇 수강생이 "웬 연예인처럼 생긴 자가 강의실에 들어오길래 의아해 했는데,교수님 아들이었군요"라고 말했다. 

둘째는 2년 전 철야 운영하는 바에서 알바해 번 돈으로 워커맨 만년필,볼펜 세트를 아빠 생일선물로 준비해 감동케 했다. 또 엄마 생일 땐 가락시장에서 홍합 등을 사와 미역국을 끓여줬다. 하는 행동을 보면 참 쿨한데,뜻밖에 정이 깊다. 이 녀석은 시베리아에 떨어뜨려 놓아도 뜨거운 물병을 들고 나타날 정도로 적응력이 강하다. 2년제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동아방송대에 재입학했다. 천만다행으로 엄마를 닮아 춤을 잘 춘다. 노래는 아무래도 친가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긴장하는 두 아들에게 말해 줬다. "아빠의 퇴직금 가운데 너희들 학비를 뚝 떼어 놓을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아빠는 조만간 다시 돈을 벌 수 있다." 얘들아,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빠를 믿으렴.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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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닭띠의 경우 통계적 기대수명은 남자 78.4세,여자 84.3세다.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 수명'은 남자 68세,여자 74세에 불과하다. 베이비부머는 이같은 통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자의 건강수명은 고작 68세이니,앞으로 아프지 않고 의젓하게 살 수 있는 날은 평균 15년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술과 담배,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스트레스 등으로 괴롭힐 경우엔 평균 건강수명을 다 누릴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저녁 술은 한 달에 한 두 번 마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꼭지가 좀 돌더라도 이 정도면 이른바 '칵테일 효과'로 몸을 엉망진창으로 몰아가는 어리석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칵테일 효과는 좋은 게 아니다. 술을 마실 때 담배를 뻑뻑 피면,즉 체인 스모커(chain smoker)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건강에 나쁜 영향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나쁜 영향의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하루 종일 책 읽고,글 쓰다 보면 아직도 담배를 끊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당분간 흡연량을 가급적 줄이도록 노력하고, 제2의 인생 계획이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담배+술'이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칵테일효과를 최소화하고, 등산을 정기적으로 하고,산책을 생활화하고,어떤 스트레스도 나름대로 풀어버린다면 1957년생 남자의 건강수명 68세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사람답게 반듯하게 살자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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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동기 모임이 1년에 몇 차례 있다. 함께 등산을 가기도 한다. 모임에 갈 때마다 많이 웃고 떠든다.대학 동기 모임엔 '이념'이 전혀 없다.따라서 항상 즐겁고 정겹다. 


학교 다닐 땐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지 않았던 동기들이 하나둘씩 친구가 돼 간다. 50대 중반에 여전히 건재한 그룹은 수 십 명에 달하는 대학교수 및 공인회계사 그룹이다.










 가업을 물려 받아 처음부터 취직하지 않은 동기들에겐 다소 부침이 있다. 행정고시로 고급공무원이 됐던 친구들은 정무직이 됐거나 산하기관으로 나왔거나 대학으로 옮기는 등 상당한 변화가 있다.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시작한 동기들은 이 분야의 베테랑들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은 드물지만,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가장 진폭도 크고 변화무쌍한 동기 그룹은 대기업과 은행,증권회사,투자회사,외국계 기업 등에 입사해 관리자나 경영자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동안에도 명함이 수시로 바뀌었는데,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하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동기 모임에서 새로 만든 내 '백수 명함'을 뿌렸다. 덕담이 많이 나왔다. "동기들 중 유일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 밀어주자"는 외침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0년 전 쯤 사업을 하는 몇몇 동기들이 진지하게 "밀어줄 수 있으니 정치를 해보는 게 어떠냐"라며 정계 진출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내 대답은 "노 탱큐"였다. 어제 모임에서도 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빈 말이라도 그냥 좋다. 꽤 돈이 많은 한 친구는 "교육 분야 사업을 하면 최소 1억 원에서 10억 원까지 투자해 줄 수 있다"며 "넌 꼭 다시 성공할 것"이라고 격려해 줬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전화해라. 술은 내가 살게. 너의 많은 아이디어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 역시 빈 말이라도 고마운 멘트다.

동기들 중 가장 친한 그룹에 속하는 리스캐피털 회사의 임원은 "마포에서 술 마실 땐 꼭 날 불러라. 여의도에서 즉각 달려와 술값 계산하고 갈게."라며 속깊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임 때마다 가장 말 많고 떠드는 내게 대학 동기들의 이런저런 격려는 큰 힘이 된다. 경영학과 입학 동기 160명(+편입생) 가운데 신문기자직으로 진출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그 희소가치 때문에 동기들은 내게 꽤 큰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대학 동기 모임과는 달리, 고교 동기 모임에 가면 꼭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온다. 거기엔 강력한 '이념'이 도사리고 있다. 뱉어내는 말들에 가시가 돋고, 때론 마음을 심하게 상하게 한다. 그들은 정치권에는 항상 불화살을 쏜다. 뿐만 아니다. 재벌그룹이나 언론,때로는 검찰과 사법부를 향해 강한 성토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모임엔 가급적 나가지 않는다. '회사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마당에 왜 '모임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고교 동기 모임보다는,대학 동기 모임에 애정을 훨씬 더 많이 쏟을 것 같다. 정담과 덕담이 오가는 모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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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준비를 하려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동기들이 함께 쓰는 사무실의 한켠을 차지하자마자 한 동기가 단단히 일러줬다. 
"야! 회사 다닐 때와는 천양지차다. 모든 걸 네 돈으로 써야 하니 금전출납부에 꼼꼼히 기록해라. 그래야 비용 통제를 할 수 있다. 당장 한 권 사서 쓰기 시작해!"











저항할 틈도 없이 몰아치는 한 친구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 순순히 따랐다. 사무실 근처의 문방구점에 가서 자그마한 금전출납부를 샀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이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에겐 가계부로 부를 수 있는 이 장부가 조만간 명실상부해졌으면 좋겠다. 출(出)과 납(納)이 팽팽하게 맞서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 
 


 



20여 일 동안 기록한 금전출납부를 꺼내 죽 훑어 봤다.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지출한 돈은 주로 개인 인프라 구축용이다. 맥pc와 모니터,전화 가설,릴 4포트 허브(USB 2.0 고속전송 Mbps),외장하드 등에 돈을 많이 썼다. 책값도 꽤 많이 들었다. 생활 잡비에 해당하는 지출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아직도 담배값이다. 이밖에 식대(식권 구입비 포함).교통카드 충전 비용 등이 주를 이룬다. 담배값은 조만간 정리 대상으로 삼아야 겠다.   


금전출납부를 쓰다보니 작은 희열이 있었다. 계산이 100원 짜리 동전까지 정확하게 일치할 땐 작은 기쁨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전혀 챙기지 않았던 100원,500원 짜리 동전에도 관심이 쏠린다. 월급쟁이로 살다 은퇴한 사람은 대범함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 꼼꼼할 필요가 있다. 누가 '쫀쫀하다'고 비웃음을 날려도 되레 콧방귀를 뀌어야 한다. 

집에는 동전이 가득하다. 현역 시절에 거스름돈이 귀찮아 저금통이나 자루 주머니에 내동댕이친 것들이다. 슬쩍 끄집어 내 봤더니 500원 짜리도 꽤 많다. 이것들은 앞으로 문구류를 살 때 요긴하게 쓸 생각이다.

은퇴한 뒤에도 호기를 부려선 절대 안된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매사에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호기나 호사조차도 출납 개념을 바탕으로 부리거나 누려야 한다. 금전출납부 작성 23일 째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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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퇴직일자가 8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진짜 코앞이다. 거친 파도 위에서 해안선으로 내려오니 무인도다. 사람이 없는 섬에선 내가 '모든 것'(everything)이다. '긍정적인 어떤 것'(something)도 아니다. '부정적인 어떤 것'(anything)도 물론 아니다. 그저 내가 모든 것일 따름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큰 자유인이니까. 

은퇴가 내게 내리는 가장 큰 은총은 자유, 바로 그것이다. 조직적 스트레스로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이 전혀 없다. 누군가,뭔가 챙기기 위해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하는 일도 당연히 없다. 술을 마시고 울분을 참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악몽 같은 추태도 이젠 옛 추억에 불과하다. 참 행복하다. 그래서 은퇴는 좋은 것이다.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은 지가 오늘로 벌써 열흘이 지났다.알코올로 목욕한 그 날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송별회 겸 송년회였기 때문에 즐거웠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노래도 맘껏 불렀고,맛있는 음식도 솔찬히 얻어 먹었다. 밤 시간을 즐겼기 때문에 그 다음 날에도 몸이 가뿐했다.


돌이켜 보면 술을 참 많이 마셨다. 한때는 직장에서 한 손에 꼽히는 술꾼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대학 시절 소주 반 병만 마셔도 헤롱대던 인간이 세파를 헤쳐오느라 고생이 심했다. 아마도 내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게다. 밤마다 알코올로 덥혀주던 주인이 왜  술 한 방울도 떨어뜨려 주지 않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일 거다. 

술도 안마시고, 시간도 내 멋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귀가 시간이 빠르다. 마누하님이 밖에 볼 일이 있는 때만 빼곤 대부분의 경우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아이들 이야기,친인척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운받아 볼 만한 영화 이야기도 화제에서 빠지지 않는다. 인간적인,너무도 인간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오전 6시 쯤 잠에서 깨어났다. 조간신문을 읽고, 테마를 하나 찾아 블로그에 끄적거렸다. 사무실에 와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작업을 계속했다. 독서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야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다. 아무리 시시하고,별 볼 일 없는 글도 테마를 잡아 쓰자면 썩 쉽지 않다. 몇몇 전문분야의 지식을 정리하고, 깊이를 더하려면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하다. 삼다(三多)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은 제2의 인생에서 필수과목이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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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했더니 허리가 아프고,옆구리가 결린다. 무선 공유기에 노트북의 방향을 맞추다 보니 몸이 뒤틀린 자세로 컴퓨터 작업을 한 탓이다. 완전 백수가 되는 첫 달인 12월의 활동을 준비하느라 요즘 회사 근무 때보다 2배 이상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결행'(선배의 표현)을 했으니 준비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큰 자유를 찾긴 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 옭아매는 틀이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자정 무렵,  등과 옆구리 부근에 파스를 다닥다닥 붙이고 산책에 나섰다. 언제나 오가는 양재천 길이 산책 코스다. 양재천엔 안개가 자욱하다. 신문에서 많이 쓰는 '안개 정국'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지금, 그야말로 앞날이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 하늘에 뜬 달이 어느새 꽉 찼다. 저렇게 만월(滿月)인 걸 보니 오늘이 음력 보름 전후인 것 같다. 집에 와서 달력을 봤더니 20일이 음력 보름인 게 맞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운 달은 또 자신을 점점 더 채워나간다. 나는 이제 기우는 달이다.다시 꽉 채워야 할 달이다.   




이에 앞서 오후엔 렌즈가 심하게 긁힌 안경을 새로 맞추러 단골점에 갔다. 뭘 하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때문에 안경테를 학생들이 주로 쓰는 검은 뿔테로 바꿀 작정이었다. 그리고 다초점렌즈도 가급적 싼 것으로 고를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값싸고 튼튼한 학생 뿔테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경점 직원은 내 자료를 찾아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2006년에 맞춘 안경과 렌즈는 아마도 최상급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직원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많은 돈을 들인 것 같다. 오늘 가격표를 보니까 당시의 수준으로 안경을 맞추려면 80만 원 안팎이 들 것 같다. 

안경점 직원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쉽게 부러진다는 학생 뿔테는 포기했다. 하지만 다초점 렌즈는 일제가 아닌 국산을 택했다. 훨씬 더 싸다. 현금으로 지불키로 하고  값을 흥정해 31만 원으로 결론냈다. 수입이 다시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지출 규모를 줄이는 게 마땅하다.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 전혀 없다. 학창시절엔 이보다 몇 배 더 고생하지 않았는가. 양재천을 거닐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그래서 속박을 떨쳐버린 자유란 좋은 것이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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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 오는 날(rainy day)'이 있다. 이럴 땐 우울해 진다. 아니 어떤 때는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다. 정신이 사정없이 흩어진다. 사태를 잘 수습해야 한다. 마누하님이 직장생활을 바쁘게 하는 터라, 내게는 특히 저녁식사의 긴급사태에 대비한 대책(contingency plan)이 필요하다. 퇴직을 앞두고 난 집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양념은 어디에 있고, 그릇은 어떻게 주방에 배치돼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몇몇 참고 사항,이를테면 라면은 몇 분 안에 끓이는 게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맛있는지 등을 마누하님에게 물었다. 나 나름대로의 '생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긴급사태 대책을 우리 군(軍)의 데프콘(Defence Readiness Condition,전투준비태세)에 준해 정리해 봤다. 이런 것도 나름 재미있다.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이 현실화한 것 아닌가.    







      [내 저녁식사의 비상 상황과 관련한 '긴급사태 대책'(contingency plan)]

          'my 데프콘' 수준          상        황          비고 /대책
           my 데프콘5  저녁 식사에 아무 애로가 없을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약속이 있거나,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  
 꿈같은 평화
           my 데프콘4 저녁 식사에 약간 애로가 있을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 약속이 없고,마누하님이 저녁 약속이 있으나 저녁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갈 수 있는 경우)
 귀가해 밥이나 국을 덮혀 먹고, 설거지를 개끗히 해야 된다
            my 데프콘3  저녁 식사에 꽤 애로가 있는 경우
(내가 밖에서 저녁 약속이 없고,마누하님이 저녁 약속이 있고 저녁을 준비하지 못해 라면을 끓여 먹거나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하는 경우,이에 준하는 경우)
 귀가해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아니면 나홀로 외롭게 밖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my 데프콘2  저녁식사에 큰 애로가 있는 경우
(마누하님의 몸이 불편해 내가 모두 다 해야 하는 경우)
 이런 일은 생기지 않길 항상 기도한다. 마누하님에게 전복죽을 사다 주고, 나도 뭔가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필요한 경우 설거지도 해야 한다. 아들 저녁도 챙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my 데프콘1  저녁식사고 뭐고 정신없어 먹을 엄두도 못내는 경우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경우) 
 하느님 맙소사. 제발 이런 일은...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오늘은 원래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한 친구에게 돌연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했다. 오후 6시가 다 돼 가던 시각,즉시 마누하님에게 연락했다. 마누하님은 오늘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한다. 이 상황은 'my 데프콘 3'이다! 하지만 난 신속 대응한 셈이다. 워치콘(watch condition,정보감시태세)으로 상황을 분석해 즉각 대처한 것이다. 
마누하님의 작전명령. "어제 끓여둔 카레,세탁기 위에 있고 밥은 두 공기 있으니 챙겨서 드세요." 






그랬다. 집에 돌아와 보니 베란다의 세탁기 위에 카레 끓인 냄비와 내 몫으로 덜어놓은 그릇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왠지 썰렁했다. 





 
 
카레를 덜어놓은 그릇을 전자렌지에 넣어 2분 돌렸다.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와 구은 김,낙지 젓을 덜어 밥상을 차렸다. 물론 밥도 데웠다. 이제 먹자. 





요리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싫고 힘드는 게 설거지라고 아줌마들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먹을 땐 좋았으나, 엉망진창이 된 그릇을 세척해야 할 일이 남았다. 주방세제를 따뜻한 물에 풀어 수세미로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잘 닦았다. 내 성격상 대충대충 닦지는 않지만, 깐깐한 마누하님의 눈에 나지 않으려면 신경을 나름대로 곤두세워야 한다. 






설거지가 끝났다. 비상사태 종료다. 이제 커피를 끓여 느긋하게 한 잔 마시면 된다. 데프콘3는 크게 놀랄 상황이 아니다. 차근히 대처하면 일이 술술 잘 풀린다. 



광고에서 자주 접했던 카피가 문득 떠오른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렇다. 잘 했다. 
장년,노년기에 접어들면 뭐든 혼자서도 잘 해야 한다! 화려한 싱글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너무 많이 타선 안된다. 스스로 기분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난해 색소폰에 입문했다. 






몇 달 하다가 중단했지만,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얼마전 바꾼 내 아이폰에선 신기하게도 색소폰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툭 튀어나왔다. 카카오톡 덕분이다. 카카오톡을 열면 눈이 동그랗고 예쁜 미혼 여선생님의 연락처가 떡 버티고 있다. 돈을 다시 벌기 시작하면 레슨 선생님에게 연락해야 겠다. 이번엔 좀 더 여유있게 색소폰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한 백수 또는 프리랜서가 아닌가.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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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휴가를 약 20일 지내다 보니 1차 계획의 일부에 칼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이런 저런 실험도 하고,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에 도전하기 위해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역시 도상(圖上)훈련은 실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부터 하나 둘 사들인 사이트 도메인(URL) 12개 가운데 7개를 풀어 적용했는데, 주 활동무대 사이트를 조절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에 바탕해 페이스북에 공개했던 웹사이트 주소 10개를 5개로 줄였다. 그리고 사이트를 키워나갈 우선순위를 확실히 했다. 









내가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어쨌든 가능한 경우 현장취재할 테마(전문분야)를 5개 분야로 확정했다. 내 직장생활 캐리어 가운데 상당분을 차지하는 보건복지 및 환경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로 했다. 물론 여기에도 우선순위를 매겼다. 서울대 의과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책이란 책은 모조리 구입해 공부하고 취재했던 깡다구를 오늘에 되살려야 겠다. 

덧붙여 여러 해 전 한의과대학에 편입할 요량으로 한동안 틈틈이 공부했던 '한의학 총설 '과 사서삼경 가운데 필요한 부분에 다시 신경을 쓸 계획이다. 5개 테마 가운데 핵심 부분이 한의학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출신 지역 등과 관련한 피해의식 탓에 꽤 오래 전부터 대탈출(엑소더스)을 꿈꾼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게 앞으로 내가 꾸릴 두 번 째 인생에서 중핵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경험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쏟는 시간도 좀 줄일 계획이다. 내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내실(內實)을 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거의 아니다. '소문내는 일'을 서로 돕는 '뉴스 캐스팅 협력 서비스'(NCCS,News Casting Cooperation Service)라고 본다. 이건 순전히 나 개인의 정의다.  따라서 거기에 걸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뤄나가는 길은 각기 다르다. 이 세상에서 나는 어느 누구와도 똑같지 생기지 않았다. 내 생각은 어느 누구의 것과도 100% 일치하지 않는다. 제 잘난 맛에 살다가 죽게 마련이다. 당신의 꿈과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인가.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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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볼 때마다 억만장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영웅 스티브 잡스 덕분에 억대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될까. 수 천 명 되지 않을까? 이런 상념에 잠길 때마다 유행가 '아직도 못다한 사랑'의 제목처럼 아직도 못다한(미완의) 책무가 가슴을 때린다. 부모로서, 그리고 큰아들로서의 책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 19일은 마지막 월급날이다. 어찌 감회가 없으랴. 두 번 째 직장인 마지막 회사에서만도 만 22년 6개월을 일했다. 몸과 마음을 바치고, 정성을 들여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머리가 나빠 도저히 못하는 일을 빼곤, 열과 성을 다했다고 홀로 자부해 본다. 사무실을 함께 쓰는 친구는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면서 이달 말일자로 퇴직하는 나에게 투자하길 권한다. 내 대답은 단호하다. " No ! "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그 흔하디 흔한 말이 이젠 내 인생의 좌우명에 버금가는 큰 화두로 떠올랐다. 모든 투자는 철저히 자신의 책임 하에 해야 한다. 귀가 얇아선 안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꼬드겨도 넘어가선 안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언즉시야(言卽是也)!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  
"위험 없이 수익 없다." (No risk, No return.)

때문에 누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꾀더라도 휘둘려선 결코 안된다. 악의(惡意)가 아닌 선의(善意)라 할지라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투자 권유에 대해선, 관계니 뭐니 따지는 차원을 넘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똑 부러지게 부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두 번 다시 권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흐물흐물,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하다간 관계도 깨지고 패가망신할 수 있다. 

혹 투자를 하려면 충분한 기간을 두고 자기자신이 열성을 쏟아 공부하고,연구하고,검토하고,고민한 뒤에 가부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 책임져 주지 않는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제2의 인생을 꾸릴 수 있다면 행복하다. 난 스스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걸 후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돈을 좀 늦게 벌기 시작하더라도 좋다. 열정과 꿈을 갖고 자기 계획을 차근히 추진하면 될 일이다. 매우 좋아하는 라틴어 표현 가운데 하나.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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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기념 부부 여행지를 이탈리아의 로마,베네치아,피렌체,밀라노 등 4곳으로 확정했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 여행을 하기로 결론지었다. 패키지 여행이 자유 여행보다 얼추 200만 원이 더 들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전혀 없이 위풍 당당 떠나기로 한 것이다. 







난 라틴어를 좋아한다. 언젠가 꼭 배우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조만간 라틴어를 접할 수 있는 형편이 됐으면 좋겠다. 또 로마와 이탈리아에 호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수 십 번이나 거듭해 본 영화 '대부' 속의 이탈리아인들을 사랑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이탈리아어가 주는 어감이 생리적으로 좋다. 




점심 식사 후 지하철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여행 이탈리아어' 책을 한 권 샀다. 7,900원인데 쌓인 마일리지 3,000원을 쓰고 현금 4,900원만 냈다. 교보문고 회원카드의 혜택이 쏠쏠하다.  회원카드는 교보문고와 반디앤루니스, 리브로 등 3곳의 서비스를 활용한다. 30년 가까이 해 온 일이 책과 비교적 가깝게 지내야 하는 짓이다보니 그렇다. 제2의 인생도 '가벼운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일구려고 한다.

포켓북을 사들고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지하철에서 혼자 씨부려 본다. 
" 꽐레 일 모띠보 델라 수아 비지따? (Qual'e il motivo della Sua visita?)   " 
" 뚜리즈모.(Turismo.) " 

  
내겐 이탈리아인 여자친구(순수한 여친)가 있었다. 1996년의 일이다. 영국 버밍엄대 정책대학원(우리식으로 하면 보건대학원)에서 연수할 때의 일이다. 버밍엄 시티센터(커뮤니티센터)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이탈리아에서 온 여성 '사라'를 만났다. 센터 건물 밖에 나와 담배를 피고 있는데,그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몇 번 마주치다보니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붙임성이 강한 그녀는 며칠 후 다른 여성 2명을 더 데리고 와서 내게 소개시켜 줬다. 한 명은 중국 여성, 또 한 명은 태국 여성이었다. 이후 우리는 다국적 '4인방'친구가 됐다. 그들은 25세 안팎이었고, 난 우리 나이로 40세였다. 그러나 나이 불문,국적 불문의 친한 사이가 됐다. 그들과 함께 밥도 먹고,영화도 보러 가고,술도 마시고,여행도 함께 했다.  그들은 내게 삶의 윤활유가 돼 줬다. 

이탈리아 여행을 앞두고 14년 전 친하게 지낸 '사라'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도 이제 40세의 중년 여성이 돼 있겠다. 그녀는 소피아 로렌처럼 눈이 크고, 원더우먼처럼 키와 덩치가 컸다. 몸이 풍성한 글래머였다. 하지만 그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종종 부끄러움을 타기도 했다. 그녀 덕분에 한국인 남자 1명과 이탈리아,중국,태국 등의 여성 3명이 허물없이 어울렸다. 서로 상대방의 몸을 툭툭 칠 정도로 유치하게 지냈다. 나로선 거의 동심으로 돌아가 초등학생처럼 그들을 대했다. 

내년 1월 초, 이탈리아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 로마,이탈리아,대부,시칠리아와 옛 친구 '사라'의 실체를 호흡할 수 있는 땅을 밟게 된다. 자유여행인 만큼, 박물관 같은 의례적인 관광명소는 가급적 피할 생각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을 돌아다닐 작정이다. 시장터나 길거리 등이 주요 코스가 될 것이다. 퇴직 기념 여행치고는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나름대로 준비해 마누하님을 잘 모셔야 겠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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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기념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3D업종에 27년 여 종사했으니 이런 호사를 한 번 쯤 누릴 자격이 내겐 충분히 있다. 그동안의 해외 여행은 신문사 자체 예산지원이나 외부 협찬으로 해왔다. 그러나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해외 유람한 적은 없다. 따라서 내 돈 내고 자유롭게 가는 해외여행은 이번이 난생 처음이다.  











여행사에서 이탈리아 여행 계획표를 보내왔다.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여행이다. 내년 1월 비수기에 갈 생각이다. 비행기삯이 상당히 싼 편이다. 해외여행 이야기는 마누하님이 꺼냈다.  난 언감생심 그런 생각은 못했다. 오로지 어떻게 제2인생을 성공적으로 끌어내 아직 못다한 두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어머니를 봉양할 것인지 골몰히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마누하님은 낙천적이고,용감하다. 그래서 난 그녀가 좋다. "여보, 그동안 수고했으니 보험 하나 헐어서 여행 갑시다. 당신도 퇴직금에서 좀 떼어 현지 여행비용 일부 부담해요." 나야 싫을 턱이 없다. 이런 호사를 잇따라 누릴 것도 아니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세상 구경 더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가이드 없이 가는 여행에서 혹 불편한 점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데 있다. 오래 전 영국에서 연수할 때 마누하님.두 아들과 함께 스위스에 갔다가 혼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 쓰는 지방에 갔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자유여행이라지만 현지 기차표까지 끊어준다는데 크게 힘들 것 같지는 않다. 가이드가 붙는 여행 상품은 액면가가 꽤 높다. 비용 절약 차원이라면 자유여행 상품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루 정도 더 고민해 봐야 겠다. 10여 년 전 중간 결산 퇴직금을 받아 겨우 조그마한 아파트 장만했고, 점점 더 졸아드는 업종에 근무해 왔던 탓에 퇴직금도 쥐꼬리만하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사 퇴직자들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젊었을 때는 그저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삼풍백화점 무너졌을 때나,성수대교 붕괴했을 때나 ,전두환.노태우 구속 사건 때나 몇 날 며칠씩 집에 못들어가고 야근을 밥먹듯 했지만 즐겁게 지냈다. 노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가혹한 현실이 코앞에 턱 버티고 있다. 말년휴가(근속 연월차 휴가)가 이달 말로 끝나면  찬 바람만 쌩쌩 부는 성(城)밖으로 나간다. 월급 받는 것도 이번 주말이 마지막이다. 

그래서 충전이 필요하다. 훌훌 털고 바람이라도 쐬어야 한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떠날 자격이 있다. 비용 문제와 안전 및 편의 문제를 저울질 해봐야 겠다. 오늘밤도 바람이 차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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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준비 휴가 14일 째다. 오늘은 새로운 실험을 해봤다.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인 크루크루(QROO QROO)와 QR코드 생성기를 활용해 최첨단 과학을 즐기는 실험이다. 

(1) QR코드 생성기(QR CODE GENERATOR) 가 있는 전문 사이트를 찾는다. 
컴퓨터 주소창에 qrcode.kaywa.com을 입력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화면을 만나게 된다. 


(2) 상단 오른쪽에 있는 생성기의 조건에 낮춰 입력한다. 



생성할 수 있는 QR코드의 컨텐츠는 URL(도메인),Text(텍스트),Phone Number(전화번호),SMS(단문 메시지) 등 4가지다. 


(3) 이 가운데 먼저 URL을 택해 본다.(라디오 버튼 선택) 
그리고 URL 빈칸에 내 사이트인 icharm7.com을 적어 넣는다.   다음에 Size를 'M' (중간)으로 택하고 바로 아래에 쓰여진 Generator박스를 누르면, 왼쪽에 QR코드와 HTML코드가 나온다. 

  
  
 
(4) QR코드(이상하게 생긴 그림)에 마우스를 대고 오른쪽 클릭해 QR코드 그림을 내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 QR코드 그림의 확장자는 png이다. 많이 쓰이는 jpg로 바꿔 놓는다.(확장자 변환) 거의 모든 사이트에 png,jpg 확장자 파일을 쓸 수 있다. 
  
                                                       (png 파일)

                                                        (jpg 파일) 


(5) 아이폰에서 다운로드 받은 무료 애플리케이션 크루크루를 활용한다. 
    아이폰을 열고 크루크루를 선택해 위 QR코드에 초점을 맞춰 갖다대면 
    아이폰에는 내가 입력한 사이트,즉 http://icharm7.com이 뜬다. 이걸 누르면 사이트로 이동해 내가 올린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QR코드에 아이폰을 들이댔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정보에 접근!) 


 바로 위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다음과 같은 URL정보가 뜬다. 
URL
http://icharm7.com



(6) 마찬가지로 QR코드 컨텐츠를 텍스트로 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든 뒤 확장자 변환을 하면 다음과 같은 png,jpg파일이 생긴다. 

   


(7) 텍스트로 만든 위의 QR코드에 아이폰의 크루크루 애플리케이션을 갖다 대면 
다음과 같은 텍스트가 뜬다. (QR코드는 너무 크면 아이폰으로 초점 맞추기가 어려우니 S나 M 사이즈를 택하는 게 좋겠다) 


희미하게 보이는 위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내 텍스트(내 이력사항 정보,12월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할 정보)가 뜬다. 
(현) 김영섭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겸 (주)푸른땅 상임고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행정국장 겸 2.0추진팀장,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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