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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하님에게서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120G 외장하드를 택배로 받았다. 텍스트는 물론 사진,영상을 많이 저장해야 하는 남편의 사정을 잘 헤아려 준 최고의 선물이다. 이래서 마누라는 '평생 동지'다. 눈깍지에 뭔가 씌워져 죽고 못살아 결혼하더라도 '연인'만으로는 평생을 지내기 힘들다. 행복감도 같이 누리지만, 가시밭길도 함께 헤쳐가야 하는 게 부부라고 난 믿는다. 





사실 마누라의 따뜻한 배려가 퇴직자에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조직에서 물러나야 할 입장에 처한 남자들에겐 마누라의 협조와 애정이 없으면 무척 힘들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퇴직자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마누하님은 위로하고 격려하고 이해해 줬다. 

마누하님이 '퇴직 기념'으로 해 준 게 몇 가지 있다. 영국에서 들어온 명품 버버리코트를 장만해 줬다. 앞으로는 사는 게 쉽지 않을 비싼 옷이다. 그리고 캠코더를 사줬다. 1인 방송국을 운영함과 동시에, 영상을 직접 찍어 편집(자르기,배경음악 깔기,자막 넣기 등) 하고  1인 리포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또 하나의 선물이 바로 외장하드다. 삼성 제품인데 귀엽게 생겼다. 외장하드 가죽 케이스와 명함 지갑,USB 케이스,그리고 영화 다운로드 상품권 등 사은품이 풍성하다. 8G~2G USB 몇 개를 외장하드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외장하드엔 앞으로 틈만 나면 많이 찍을 사진을 저장하는 데 가장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물론 각종 프로그램 CD도 외장하드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귀한 선물도 고맙지만, 무엇보다도 남편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애쓰는 게 훨씬 더 가슴에 와닿는다. 그녀는 보험 하나를 해약해 내년초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더 늦기 전에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떠나자"고 마누하님은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말이 있다.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네 엄마를 만난 것이란다." 

      
글 = 김영섭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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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 사이트인 워크홀릭 닷컴(walkholic.com)과 온라인 백과사전인 오픈토리 닷컴(opentory.com)을 함께 만들었던 후배들과 광란의 밤을 보냈다. 홍대앞까지 진출했다. 
일본으로 유학 간 후배, 지방 출장길에 발이 묶인 후배,서울대 로스쿨에 간 후배는 오지 못했다. 웹2.0 TF 초기 멤버이자 핵심이었던 사람은 나를 포함해 7명이었다. 나중에 20명으로 늘어난 이 팀에선 사이트뿐만 아니라 자신의 걷기 기록을 평생 간직할 수도 있는 온라인 만보기(워키)까지 만들어 봤다. 만보기는 2G 짜리 USB를 달고 있다.





이날 내 송별회 겸 송년회 모임을 주관한 분은 우리 팀의 '프로젝트 오너'에 해당했던 K선배였다. 회사에선 서열이 매우 높은 고위 임원이다. 홍대앞 노래방에 가기 전, 한국경제 사옥 옆에 있는 한정식집 '은정'에서 진짜 굴비를 찢어 안주로 먹는 등 고급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회사에 나가지 않은 지 10여 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스트레스 안 받아 얼굴이 좋아졌다"고들 한 마디씩 한다. 


웹2.0추진팀은 내 제2의 인생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 같다. 2007~2008년 두 해 동안 걷기,자전거 캠페인을 펼치고, 2.0사이트를 구축 및 개선하는 작업을 했던 경험은  매우 값진 것이다. 특히 웹2.0추진팀을 이끌면서 맨땅에 헤딩한 수고로움을 인정받아 2009년 한 해 동안 고려대학교 언론학부(올해 미디어학부로 개칭)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일은 세컨드 라이프의 추진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를 휴직하고 강의 전담 교수(초빙교수)로 봉직하면서 컴퓨터학원에서 웹 디자인,웹 프로그래밍 과정을 한 바퀴 돌았기 때문이다. 



  


조인스닷컴에서 기자 블로그(파우스트의 인생탐험, blog.joinsmsn.com/edwdkim)를 열심히 운영하고,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학위논문을 블로그 연구로 쓴 덕분에 행정국장 겸 웹2.0 TF 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이 일 덕분에 고려대학교 초빙교수가 되는 큰 은혜를 입었다. 오픈토리는 내 아들,워크홀릭은 내 딸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50대인 내가 함께 일했던 20~30대의 젊은 후배들은 영원한 동료이며, 직계 보스였던 K선배는 영원한 선배다. 이들이 성(城)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주고,격려해 줘 기분이 참 좋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기자  김영섭(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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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white hand)에게도 정처(定處)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안 퉁수가 돼선 결코 안된다. 집에서 부부가 하루 종일 마주쳐서 좋은 일이라곤 썩 없다. 그럴 준비조차 못했다. 일본 등 외국에선 퇴직 후 부부여행하다 심한 싸움을 벌여 끝내 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부부가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좁은 주거공간에서 이격거리를 고작 10m 안팎으로 유지해선 탈 난다. 노인봉을 비롯한 전국의 산들이 할배들로 꽉 차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나도 대책을 일찌감치 마련했다. 일정하게 나갈 곳을 마련하느라 마이너스 통장에서 250만원을 꺼내 사무실 (공동)보증금으로 내고, 관리비와 물값.전기값 등으로 매달 30만 원 내기로 한 것이다. 이런 '하루 1만 원 내고 출근 하기' 프로젝트는 그냥 폼으로 하는 게 아니다. 일시적 실업자로서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에 '퇴직자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훌훌 날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컴퓨터 등 장비와 사무실 집기를 차례차례 갖춘 데 이어, 오늘은 명함 제작에 들어 갔다. 

도메인 회사에서 산 닷컴 URL을 리다이렉팅해 티스토리 블로그에 마련한 온라인 연구소의 대표라는 '제멋대로 직함'을 명함에 박기로 했다. 이건 순전히 내 마음이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기자'라는 직함을 명함에 쓰겠다고 했더니 우리 마누하님의 반응이 참 재미있었다.  '대표' 뒤에 덧붙일 말이 있단다. "혼자 다 혀~어" 

둘이 한바탕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 마누하님 말씀대로 할작시면 내 새로운 명함에는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혼자 다 혀 유!' 라고 박아야 한다. ㅋㅋㅋ~~~
배꼽이 제 자리를 잡을 때 쯤, 본인의 한 마디. 
"당신은 국어 선생님이니 객원기자 혀!" 

어쨌든 온라인 연구소 대표를 명함에 우대한 뒤, 친구네 회사 '상임고문'을 뒤따르게 했다. "야,친구! 나, 너네 회사 직함 하나 물고 갈 것 없냐?" 
친구 왈. "고문으로 해라."  한참 뒤 대학동기는 일을 보러 외출했다. 그런데 왠지 '고문'으로 박기는 허전했다. 전화를 걸었다. "야! '고문'이 좀 썰렁한데, 다른 명칭 좀 쓰면 안되냐? "  친구가 깔깔 웃으며 말한다. " 대표 빼고는 니 맘대로 해라. 회장도 좋고!" 또 한 번 키득키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상임고문으로 할란다." 드디어 새로운 명함이 나온다. 2010년 11월 11일 명함 디자인, 2010년 11월 12일 '제멋대로 명함' 탄생! 참 재미있다. 그러나 이또한 지나가리라!!!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기자  김영섭(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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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부지법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홀로 식사를 하러 온 중장년,노년층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짐작컨대 법원 근처의 법무사 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아닌가 싶다. 미역국을 포함해 1식 5찬. 오랜 만에 콩나물밥에 간장을 쳐서 먹는 메뉴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가져온 밥과 반찬을 다 먹었다. 식권은 한 장에 3500원. 매점에서 10장을 사서 챙겼다. 서부지법 외에도 큰 구내식당이 이 근처에 2곳 더 있다고 한다. 서부지검과 마포경찰서의 구내식당이다. 밖에서 김치찌개,칼국수,순대해장국 등을 간단히 먹으려면 5000~6000원 짜리를 파는 음식점에 가면 된다.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났더니 뜨끈뜨끈한 유자차가 기다린다. 목구멍과 가슴이 시원하게 툭 트이는 듯하다. 가장 번잡한 시간을 피하면 줄을 서지 않고 점심을 이렇게 뚝딱 해치울 수 있다. 본격적인 퇴직 준비를 위해 말년휴가(연월차휴가)에 들어간 지 10일 지났는데, 무난히 잘 적응해 가고 있다. 6개월 내지 1년 동안 착실히 준비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쉬었다 가라는 식당 의자의 호의를 뿌리치고 사무실로 향했다. 할 일이 많다. 오늘은 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 프로그램 CD를 여러 개 갖고 와 맥 미니PC에 깔았다. 우선 익숙한 윈도우를 쓰면서 낯설기만 하는 맥에 서서히 도전할 생각이다. 비어 있는 줄 모르고 갖고 온 CD 때문에 애를 먹었다. 첫 CD를 넣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맥을 만질 줄 몰라서 발생하는 일로 생각하며 끙끙대다 이내 정신을 차려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명함을 디자인했다.

"회사에서 나오면 모든 게 돈이다"라던 친구들의 말이 점점 더 실감난다.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 휴대폰 및 유선전화 비용, 소모품 구입비, 식사비 등을 모두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난 '백수 연습'을 도상훈련으로나마 꽤 했다. 때문에 이런 일들이 귀찮거나 당혹스럽지 않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조차 없이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분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지위와 거기서 파생되는 혜택이 매우 쥐꼬리만한 직업이라도 막상 성(城)밖에 나오면 크게 보이게 마련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좋은 것도 있다. 그건 바로 '무한 자유'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나의 생각과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중학교 시절 이후 얼마 만의 짜릿한 자유인가. 우주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오늘을 그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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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오전 사무실에 내 전용 전화가 가설됐다.
한 사무실을 쓰는 대학 동기가 이 전화기로 집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 "개통을 축하합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2의 인생'(second life) 장도(壯途)에 오르는 베이비부머는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퇴직 전에 망가진 이빨을 치료하기 위해 6월부터 서둘렀다. 임플란트 대상 이빨 두 개 가운데 하나가 오늘 심어졌다. 다음 주엔 실밥을 빼면서 본을 뜬다고 했다. 그 다음엔 또하나의 이빨 심기로 넘어갈 예정이다. 11월 중 치료가 모두 끝나면 좋겠다.





 '내가 이 세상에 살 필요가 없을 때'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비싼 치료비 때문에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할 경우다. 그 정도도 안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하다. 겨울철 지리산에 들어가 소주 몇 병 마시고 잠이 든다면 자연사(自然死)의 형태로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다. 몸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갈 수 있다. (물론 이는 '死卽生 生卽死'의 각오로 살겠다는 의미다.)


치과 진료를 마친 뒤 머나먼 사무실로 출근했다. 전용 전화로 마누하님과 첫 통화를 했다. 비용이 들긴 하지만 대학 동기들의 공동 사무실에 합류한 건 잘한 일이다. 실업자가 집에 있다간 우울증에 걸리거나 퇴보의 길로 치달을 우려가 크다. 외부의 자극을 받아야 자신이 기획한 길로 더욱 정진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전용전화를 놨으니, 이제 명함을 만들어야 겠다. 내가 직접 만들까 인쇄소에 맡길까,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곰곰 생각 중이다. 올초부터 후이즈(whois.co.kr) 등에서 구입한  URL 12개 가운데 7개를 블로그에 리다이렉팅해 놨으니 닷컴,닷넷이 7개나 된다. 페이스북에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두 까발겨 놨으니 페북 주소를 명함에 박을 수도 있겠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는 어떨까. 아니면 'IT코치(Coach)'라고 박을까?  내 1차 계획은 '스스로 고용하라'의 실천이다. 그런 다음, 남을 고용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출 참이다. 1차든 2차든 준비 기간이 꽤 길 것 같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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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철석같이 믿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박사의 책 이름이다. 
20101년 11월 8일. 퇴직 준비를 위해 한 달 간 휴가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몇 달이 훌쩍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날 저녁엔 소셜미디어랩세미나에 참석했다. 소셜미디어랩은 베타뉴스 이직 대표가 운영한다.회비 1만 5000원(현장 등록,예약 등록은 1만원)









오후 8시부터 녹사평역 회의실에서 진행된 이날 세미나 밮표자는 김중태 IT연구원장이었다. 그가 쓴 비즈니스 미래지도 시리즈 2권을 정성들여 읽은 터라 내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선 시간,공간,사람 및 방향  가운데 하나둘 바꿔보라"는 말에 필이 꽂혔다. 이거 하나 건진 것으로도 회비는 아깝지 않았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QR코드에 대해 들었다. 
QR코드는 관련 사이트(http://qrcode.com)에 가면 만들 수 있다. 


아이폰의 어플 중 하나인 스캔서치(ScanSearch)로 책 표지를 스캔하면 도서 정보가 가지런하게 나오는 것도 세미나 강의 도중 해봤다. 재미 있었다. 가까운 지형지물(nearby)은 혼자 해 본 적이 있다. 세미나 후 뒷풀이를 너무 길게 했다. 물론 내가 부추겼다. 젊은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무리를 한 셈이다. 

이에 앞서, 점심엔 퇴직 사우 한 분,재직 후배 한 분과 횟집에서 소주를 몇 잔 마셨다. 사무실에 돌아와선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한 꼭지를 번역해 봤다. 참 오랜 만의 경험이다. 23년  전 연합통신(연합뉴스의 개칭 전 회사 이름) 외신부에서 기사를 만든 이후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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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7일 일요일. 

고위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올 6월 말로 퇴직한 고교 동기에게서 오전 10시 30분쯤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등산을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난 흔쾌히 응했다. 어제 명성산에 갔다 왔지만, 회사 퇴직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하느라 산에 정기적으로 못간 지 꽤 여러 달이 지났기 때문에 좀 무리해 보기로 했다. 대신 야트마한 동네 산을 택했다. 



                     [사진설명] 대모산~구룡산을 거쳐 양재천으로 내려와 노르딕워킹 폴대를 짚고 포즈를 취했다.



이 친구는 내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아한다. 농촌 출신으로 참 열심히 살았고, 지방 근무도 비슷한 시절에 함께 했다. 직장의 입장 차이로 시각은 달랐으나, 하는 일도 매우 비슷했다. 이보다 더욱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코피를 쏟을 정도로 노력했다는 점이다. 내 고교,대학 동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퇴직 후 실의에 빠지거나 엉뚱한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있는 재산도 홀라당 다 까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 친구도 전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택했다. 하지만 서울 소재 한 대학의 평생대학원에서 부동산과 부동산 경매를 열심히 공부했다. 재직 중 휴일을 이용해 틈틈이 전국 각지를 돌며 부동산을 관찰했다. 관계자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퇴직 후엔 법원 경매 현장을 몸으로 겪었다. 엄청난 열정 덕분에 그는 최근 지방에 있는 경매 물건을 낙찰받았다. 그리고 농업인에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술을 마실 때도 절도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마누하님이 호감을 종종 보이는 사람이다. 얼추 1년 6개월 동안에 걸쳐 퇴직 준비를 나름대로 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술을 퍼마시면서 직장 생활의 낭떠러지까지 떼밀려 가는 모습을 숱하게 봐 온 터라 그가 대견해 보였다. 그의 퇴직이 6월 말로 확정된 올해 초, 난 그에게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꼭 기회가 온다'는 말을 굳게 믿기로 했다. 그렇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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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8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에 있는 명성산에 올랐다. 후고구려 왕 궁예가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칩거하며 꺼이꺼이 슬피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울 명(鳴)자에,소리 성(聲)자를 쓴다. 수계법사가 지난해 내린 내 법명인 종명(鐘鳴)의 '명'자와 같은 한자가 포함돼 있다.



[사진설명] 명성산 등룡(登龍)폭포 앞에서 막걸리 잔술 한 잔을 시켜놓고.




명성산에 올라 갈대밭을 구경하고 하산한 뒤, 닭 백숙과 잡어 매운탕으로 식사를 했다. 일행은 산정호수 한화리조트로 이동해 온천욕을 했으나, 난 일행에서 서둘러 빠져 나왔다. 그리고 대학 과 동기들과 함께하는 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비상 상경작전을 썼다. 한화리조트~시외버스터미널(택시비 6500원)~수유리(시외버스 요금 6700원)~지하철 교대역~선릉역(택시 비용 망각). 

계 모임의 멤버 8명 가운데 보험회사 임원, 캐피털회사 임원,국책은행 해외지점장(해외 거주 중), 감정평가법인 임원과 나를 뺀 나머지 3명은 벌써 자유인이다. 나도 다음달부터 자유인 그룹에 속하게 된다. 50대 50으로 조직원과 비조직원의 구성 비율이 바뀌게 된다. 일찌감치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한 친구들은 나름대로 자유롭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각기 고충이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직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내 결정에 대해 무척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꾸리는 과정을 잘 정리해 자신들에게 조만간 친절하게 가이드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40대 임원시대'에 50대들이 좌불안석,전전긍긍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난 받아 들였다. 

제2의 인생길에 들어서면서 불안감을 갖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상당수의 경우 박탈감과 허전함,인생무상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백수 선배들은 전한다. 누구에게나 제2의 인생은 막막하고,불확실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던 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면 불안감을 꽤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일을 시작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퇴직금이나 기존의 재산을 털어 새로운 사업을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월급 꼬박꼬박 받다가 허허벌판에 서는 장년에겐 실패 후 재기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게 선배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자신이 종사해 온 일을 발전시켜 제2의 인생을 도저히 꾸릴 수  없는 경우엔 차라리 자원봉사 등 보람있는 소일거리나  만들어 지내는 게 좋다고 한다. 그나마 있던 재산을 다 들어먹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는 것이다. 섣불리 새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건 말년의 쥐약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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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준비도 없이 성(城)밖으로 나오면 안된다. 작은 채비라도 상당 기간 꾸준히 해야 한다. 요즘 고교 또는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화제로 삼는 주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건강이고, 또 하나는 제2의 인생(the second life)이다. 이들 최대 관심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친구들도 파트너로서 사내 지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행정고시나 외무고시에 합격해 직업공무원의 길을 걸어온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1급(관리관)~3급(부이사관)을 고위공직자로 묶어 운영하는 시스템이 가동된 이후 고급 공무원들도 안절부절 못한다. 경제부처에 근무했던 몇몇 친구들은 이미 산하기관으로 내려왔거나 외부로 나왔다. 대학의 2년 계약 연구교수직으로 떠난 친구도 있다. 남아서 버티고 있는 친구들은 좌불안석이다. 기업의 '임시 직원'(임원) 들은 말할 나위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석사학위를 따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다. 박사학위를 따도 그걸로 다시 밥벌이를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나이가 '5'자를 달면 운신의 폭이 무척 좁아진다. 퇴직을 한 친구들은 익히 아는 진리 한 가지. 자기 분야에서 꽤 성취한 사람도 퇴직 후엔 '쓸모는 많으나, 쓸 데가 없다'는 식의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공직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다 고위공직자로 옷을 벗은 한 친구는 마지막 근무 기간 약 1년 6개월 동안 나름대로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했다. 부동산 및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고 현장에서 익혔다. 퇴직 후엔 스스로 경매에 뛰어들어 지방의 임야 2곳을 낙찰받았다. 그리고 '농어민'의 길로 접어 들었다. 돈이 될 만한 초목을 심을 계획이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코스를 밟고 있다고 한다. 

성(城)밖으로 나오면 이전의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훌훌 떨쳐버려야 한다. 자신이 종사했던 직업의 힘에 기대선 안된다. 전관예우를 받아 쉽게 업(業)을 세우는 사람도 있을 터이나,이는 모래 위에 집짓기다. 기초가 부실해 곧 무너지고 만다.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 다시 사회 초년병처럼 정신무장을 하고,바탕을 튼실하게 해야 한다. 부동산과 농어민의 일을 제2의 인생 길로 택한 친구와 나는 이런 생각에 공감했다. 

퇴직 후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전에 했던 일을 떠벌리며 자랑해선 안된다. 일종의 묵계다. 그리고 성(城)밖에선 귀족도 천민도 없다. 모두 다 평민이다. 식사도 2번 이상 얻어먹기만 해선 관계 자체가 깨진다. 더치 패이(Dutch pay)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자식 자랑이라도 할라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사야 한다.그래야 자랑을 들어준다" 고 한 퇴직자는 말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고도 남는 말이다. 

퇴직 전에 제2의 인생과 관련한 그림을 그리고,준비를 나름대로 해도 삶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아무 준비 없이 나오면 죽음이다. 그야말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기 십상이다. 나는 얼마나 준비가 됐는가.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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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고 하셨어요." 
정오에 인사동에서 만난 회사 동료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는 지난 연말 자유의 몸이 됐다. 올 연말까지 실업수당을 받는다고 한다. 퇴직하는 즉시 노동고용부 산하기관에 실업 신고를 해야 한다. 좀 괜찮은 직장에 있다가 여러 사유로 더 버틸 수 없어 퇴직한 경우 퇴직수당은 4개월 때 들어서면서 받는다. 최장 8개월 동안 수입이 생길 때까지 받을 수 있다. 물론 실업수당 수혜 조건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난 어제서야 그걸 알았다. 당장 퇴직후 생활비 계획에 일대 수정을 가해야 할 판이다. 검색엔진을 이용(검색어 실업수당)해 노동고용부 사이트에 가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 없습니다]



전직 회사 동료는 오늘 내게 한턱을 쐈다. 1인당 1만 2000원이나 되는(!) 한정식을 사줬다. 그렇다. 백수가 되면 이렇게 비싼 점심을 매일 먹어선 안된다. 소비 규모를 확 줄여야 한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 전혀 없다. 그동안 너무 기름지고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지 않았는가. 술도 마찬가지다. 값싼 술로도 얼마든지 기분을 낼 수 있다.  

사무실로 돌아와 중요한 '백수 팁(tip)'을 또 하나 들었다. 퇴직준비하면서 구입한 물건의 영수증을 모두 모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나중에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사업자 등록을 한 뒤 창업비로 올려 세금을 덜 낼 수 있다고 한다. '알아야 면장 한다'는 말은 진리다. 월급 꼬박꼬박 받고 살다가 성(城)밖으로 나서는 사람들에겐 재교육이 긴요하다. 돈을 만질 이유가 없는 저널리스트 같은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  대부분의 퇴직 준비자는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에 불과하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에 선 퇴직자는 모름지기 많은 구루(Guru)들의 지도편달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저녁엔 최고경영자과정에 참석한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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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일. 돈 내고 '출근'한 둘째 날이다. 

아침에 티스토리에 올린 글을 다시 훑어보았다. 이어 최근에 관심을 둔 트위터 광고 '애드얌'에 들어가 내가 트윗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애드얌의 마케팅 행위로는 아직 푼돈밖에 건질 수 없다. 하지만 초창기라 여기에 작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애드얌'의 트윗 인정 인원이 현재의 50명~150명에서  1000명 정도까지 올라가고, 하루 트윗 인정 횟수도 10회 이상으로 높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넘어 거의 공상 수준의 생각을 해본다.







 조건이 1000명/10회로 좋아지고 이를 다 뿌릴 수(casting할 수) 있다면 파워 트위테리언은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계산 상으로는 한 달에 120만원의 수입(1000명 × 4원 ×  10회 × 30일) 을 올릴 수 있다. 애드얌 임직원도 이런 종류의 꿈을 꾸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애드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직 돈을 벌 수 없는 사무실이지만 전화를 놓기로 했다. 
대학 동기생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핸드폰을 많이 쓸 경우 한 달에 10만원 이상 요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선전화를 놓기로 한 것이다. 친구가 대신 전화를 신청해 줬다. 번호는 나왔고,가설은 9일에 할 예정이다. 전화 가설비(가입비)는 6만원이라고 한다. 월 기본요금은 5200원이다. 착신전화 서비스를 추가하면 월 1000원을,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추가하면 월 2800원을 기본료에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착신전화 서비스는 받지 않을 터이니 내가 쓸 전화의 기본요금은 월 8000원이 된다.  개인 명의로 바꿔야 할 핸드폰 약정조건은 더 신중히 생각해 퇴직 때 적용할 계획이다. 

서대문 사거리로 나가 발신자 표시 서비스가 되는 전화기를 샀다. 2만 4000원. 날짜 등을 세팅하고, 알카라인 1.5볼트 건전지 3개를 사 넣었다. 로케트 건전지 6개에 5700원. 모든 걸 내 호주머니에서 빼 써야 한다. 백수의 작은 슬픔이다. 큰 자유를 얻으며 치르는 대가다.   

저녁엔 모교의 단과대학 동창회가 내는 계간지의 편집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계간지 편집인 직무대행(비공식)이기 때문에 회의가 끝난 뒤 신입기자를 따로 만났다. 인사동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편집 때 유의할 사항을 비교적 꼼꼼하게 알려줬다. 더불어 인생을 여러 막(幕)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펼쳐 보여줬다. 이 때문에  이틀째의 '백수일기'를 제 날에 쓰지 못했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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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이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무대 밖에도 할 일이 참 많다. 하지만 선뜻 퇴직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다.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어린 새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봉양할 부모가 계시는 맏아들이라면 퇴직을 결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1년 여의 백수연습을 거쳐 퇴직연습에 들어간 첫 날이다.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그동안 쌓인 연월차 휴가를 활용해 예비퇴직의 길목으로 접어 들었다. 기한은 1개월이다. 오늘부터는 돈을 내고 '출근'한다. 하지만 12월부터는 월급을 줄 사람도 없다.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아내야 한다. 오퍼상 등 사업을 하는 대학 동기생 세 명이 있는 사무실의 한켠을 치워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사무실 보증금 조로 250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그리고 매월 30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새 삶을 찾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간절하게 갖고 싶었던 애플사의 맥 미니PC를 구입했다. 
PC 본체가 참 작고 예쁘다.모니터는 삼성 21.5인치 짜리를 샀다. 합쳐서 116만 원. 맥PC용 키보드와 마우스는 친구에게서 얻었다. 아직 반납하지 않은 회사 노트북의 즐겨찾기를 새 PC에 세팅했다. 친구가 친절하게 함께 가 준 덕분에, 아현동 기구단지에서 의자와 서랍장을 8만 원에 살 수 있었다. 

회사 밖으로 나서면 모든 게 돈이다.
더 이상 월급쟁이의 특권과 혜택은 누릴 수 없다.  "성(城)밖으로 나가면 찬바람이 쌩쌩 불 것"이라며 퇴직을 극구 만류하던 선배의 모습이 순간 떠오른다. 하지만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꽤 오래 전 얻었으니, 새 출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버틸만큼 버텼다.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긴 싫다는 생각이 행동을 지배했다.  "잘 났어,정말!" 이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방석과 문구류 등의 값도 꽤 물었다.     




회사를 마음으로 정리하면서 내 자리에 있던 책도 많이 정리했다. 
그 때문에 주로 집에 있는 책을 새 보금자리로 옮겨야 했다. 찬 바람이 쌩쌩 불던 10월의 마지막 날, 마누하님이 승용차로 책을 실어다 주었다. 당초 강남에서 마포까지 한 차례 이사를 부탁했다. 그런데 마누하님이 사무실에 핸드폰을 놓고 갔다. 뜻밖의 실수 덕분에, 난 두 차례에 걸쳐 이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잠실 음식점에서 올갱이국을 점심으로 먹은 뒤 집으로 가서 책 한 보따리를 또 싸서 사무실로 옮겼다. 마누하님은 두 지점 사이를 두 차례 왕복하느라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참 고마운 실수였다. 두 차례의 왕복 운전을 이용해 사무실의 책장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천우신조(天祐神助)!






제2의 인생을 꾸리면서 맥 미니PC를 장만해 무척 기쁘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에 이어 맥PC까지 손에 넣었으니 명실상부한 '애플 패밀리'가 됐다. 스티브 잡스가 보너스로 무슨 선물 하나 주지 않나? 어쨌든 사무실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추고, 난생 처음 가계부(금전출납부)를 사 쓰기 시작했다. 앞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탓인지 뒷골이 쑤신다. 파스를 발랐더니 좀 낫다. 어차피 깨뜨려야 할 껍질이다.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더 큰 자유를 찾아 날갯짓을 해야 한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베이비부머&실버연구소 대표 / 기자  김영섭 (http://www.facebook.com/edw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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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_29살처럼 살기]① 프롤로그...우리에겐 아직 꼴릴 배알이 있다



당신은 요즘 안녕하신가. 
머리가 흔들리고,아랫도리가 후들거리지 않는가. 그럴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은 베이비 부머(baby-boomer)니까. 



당신은 지금 어질어질하다. 
땅이 언제 푹 꺼질 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세대로 치면 '낀 세대'요, 직장인으로 말하자면 '애물단지'다. 아직 안됐다면 곧 그럴 운명에 처해 있다. 집에선 마누라 눈치 살피느라 눈알이 개그맨 이경규처럼 잘도 돌아간다. 하지만 하릴없다. 포기하라. 저항할 힘도 없다. 당신은 베이비 부머니까.

당신은 이런 추한 몰골로 하염없이 늙어만 갈 것인가. 
꽃다운 이팔청춘은 언감생심. 그러나 우리에게도 오기가 있다. 자존심이 있다. 아직 꼴릴 배알도 있다. 우린 붐(boom)을 일으키면서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처럼 붐을 일으킨 세대 있을까.  

내로라하는 '58년 개띠'는 우리의 표상이다. 개처럼 살았지만, 아들딸 공부시키고 엄마아빠 모셨다. 니들이 '개'를 알아? 우리는 그 이름 짜한 베이비 부머다. 출산장려 없어도 쑥쑥 잘만 나왔다.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순둥이로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자랑스런 베이비 부머다. 

보릿고개를 뚫고 왔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 고구마,감자 굽지 않고도 잘만 먹었다. 헤어진 검정 고무신을 꿰매 신고 살았다.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았다. 흰 고무신에 귀한 목숨까지 걸었다. 아까워서 품에 안고 걸었다. 운동화 신기만 하면 하늘을 날았다. 피터팬보다 더 높이 날았다. 송편이 칩(chip)이었다. 송편 따먹기로 친구의 눈물을 짜냈다.  

상아탑을 쌓았다. 소를 판 돈은 대학의 젖줄이 됐다.만원버스보다 훨씬 더한 북새통 완행열차를 타고 왔다. 용산역 갈보,구로공단 여공은 고향누나들이었다. 서울의 달은 낮았다. 달을 품고 사는 동네에서 책을 읽었다. 개 패듯이 패는 고참병의 손맛도 아련한 옛 추억이다. 예비역 병장 계급장의 댓가다. 

셋방살이,지하 단칸방 살이도 좋았다. 떡순이와 사는 게 마냥 행복했다. 고주망태는 직장인의 이름이었다. 공짜술로 뱃때기에 기름이 튀겼다. 아들 이빨이 언제 빠졌는지 잘 모르고 살았다. 집안 챙기면 회사에서 짤렸다. 숨차게 기어올랐다. 사다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억울하신가. 
그리고 서러움에 가끔 눈물을 쏟는가. 눈물을 주워담을 쓰레받이조차 없는데. 어느덧 사다리에서 내려와야 하는가. 자식들을 아직 비행기 태워 보내지도 못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실건가. 목숨이라도 끊으실 건가,비겁하게. 


당신의 이름은 베이비 부머. 
출산 붐을 일으킨 시대의 풍운아.찬 바람도 좋다. 풍찬노숙이 대수랴. 우린 할 수 있다. 7080은 아직 살아 있다. 

당신의 수인번호는 19631955.
감옥에서 쫒겨난다고 서러워 마라. 자유의 바람이 그대를 맞으리니. 

[베이비부머_29살처럼 살기]② 베이비 부머는 살아 있다?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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